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응과 반복 진술 등으로 2차 피해를 겪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제폭력은 가해자 접근금지나 분리조치를 할 별도 법적 근거가 없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제도를 우회 적용해야 하는 등 피해자 보호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대 치안대학원은 최근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의견수렴 조사 연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피해자 24명, 피해자 보호 담당 경찰관·수사관 20명, 지원기관 종사자 20명 등 총 6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피해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한 것은 신고 단계에서의 미흡한 대응이었다. 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두려워 지구대를 찾았지만 연락처를 차단한 상대방에게 직접 전화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여러 경찰관 앞에서 피해 사실을 반복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또 데이트 폭력이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는 스토킹 가해자인 전남편이 자신의 새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경위를 상담하러 경찰서를 찾았다가 “전 남편에게 어떻게 알아냈는지 직접 물어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떠안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블랙박스와 문자, 통화내역 등 증거를 직접 모으고 사건 진행 상황도 스스로 확인해야 했으며 사건이 여러 지역 경찰서로 나뉘어 이송되면서 담당 수사관과 송치 시점이 제각각인 경우도 있었다. 국선변호사 선임이나 동행 진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사가 끝난 뒤에야 안내받거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같은 피해 사실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는 사례도 나왔다.


경찰관들은 교제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별도의 법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현장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꼽았다. 스토킹은 잠정조치를 통해 접근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고, 가정폭력도 임시조치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지만 단순 교제폭력에는 이와 같은 별도의 보호조치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교제폭력은 현재 독립적인 법률이 없어 형법과 스토킹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등을 일부 적용한다.
이 때문에 경찰은 교제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두 사람이 동거했다면 사실혼 관계로 판단해 가정폭력 제도를 적용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5~6개월간 교제한 20대 남녀 중 남성이 여성 집에 한 달가량 전입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사실혼 관계라고 판단해 가정폭력 임시조치를 신청한 사례가 담겼다. 그러나 검찰은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로 보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경찰관들은 교제폭력 자체에 접근금지나 분리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굳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요건에 맞추려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별도 보호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보호조치에도 사각지대가 있었다. 민간경호의 경우 한 경찰관은 2023년 수도권 단위로 운영할 당시에는 당일 밤에도 투입할 수 있었지만 이후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서 최소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민간경호를 신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답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피해자들을 위한 임시숙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나왔다.
관계성 범죄 신고는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신고 건수는 2021년 1만4509건에서 지난해 4만4687건으로 4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교제폭력 신고는 같은 기간 5만 7305건에서 지난해 10만 5327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보고서는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 보호조치 법제화와 피해자 권리고지 문자 자동 발송, 2차 피해 방지 수사 프로토콜 마련, 스마트워치 지급 확대, 민간경호 신속 배치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