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규모 키우면 똑똑해질까?"…AI 만든 사람도 잘 몰랐다

입력 2026-08-28 19:04   수정 2026-08-29 04:39


“인공지능(AI)에 10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불과 7년 전만 해도 이 질문에 확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려면 사고의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통념이었다. 그런데 AI 연구자들은 뜻밖의 길을 발견했다. 인간의 지식을 일일이 가르치는 대신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의 규모를 키우자 AI의 성능이 계속 좋아졌다. 번역하고, 코딩하고, 수학 문제를 풀더니 어느 순간 연구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능력까지 나타났다. ‘규모를 키우면 더 똑똑해진다.’ 한때 대담한 가설이었던 이 생각은 오늘날 세계 최대 기술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AI 경쟁의 핵심 원리가 됐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스케일링 시대>는 바로 이 변화가 일어난 2019~2025년을 AI 혁명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로 기록한 책이다. 유명 팟캐스터 드와르케시 파텔의 인터뷰를 AI 연구자 개빈 리치가 주제별로 엮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공동창업자 등 AI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책의 중심에는 제목 그대로 ‘스케일링’이 있다. 2019년 AI 연구자 리처드 서튼은 유명한 글 ‘쓰라린 교훈(The Bitter Lesson)’에서 AI 역사가 드러낸 한 가지 교훈을 짚었다. 인간의 지식을 정교하게 집어넣은 방법보다 더 많은 계산을 활용할 수 있는 범용적 방법이 장기적으로 더 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이후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스케일링은 AI 산업의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책에 실린 재러드 캐플런 앤스로픽 공동창업자의 미공개 인터뷰 등은 이 믿음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더 많은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로 모델을 훈련할수록 일정한 경향에 따라 성능이 향상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델을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규모를 늘렸을 때 성능이 얼마나 좋아질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케일링은 막대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를 정당화하는 산업의 원리로 발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혁명의 주역들도 의외로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LLM이 정말 사고하는 것인지, 방대한 문장에서 다음 단어를 예측하도록 훈련받는 과정에서 어떻게 추론과 문제 해결 능력이 나타나는지부터 의견이 갈린다.

스케일링을 계속하면 인간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놓고도 생각이 다르다. 심지어 AGI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인터뷰이마다 정의가 다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들의 AGI 도래 시점 전망을 나란히 놓으면 상당한 차이가 드러나며, 예측 자체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의 묘미는 이런 불확실성이다. AI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미래를 설계하는 예언자가 아니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의 능력이 빠르게 커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디까지 갈지를 가늠하는 당사자들이다. 기술적 자신감과 불안이 묘하게 공존한다.

논의는 AI가 인간의 의도와 가치에 맞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정렬(alignment)’ 문제로 이어진다. AI의 능력이 인간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을 때에도 인간이 정한 목표를 따르도록 만들 수 있을까.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AI가 다른 목표를 좇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기술을 넘어 경제와 정치로 뻗어나간다. 인간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AI가 수백만, 수십억 개 존재한다면 지적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AI가 다시 AI 연구에 투입된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는 얼마나 빨라질까. 첨단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확보한 국가가 압도적인 전략적 우위를 갖는다면 AI는 산업기술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이 된다.

AI와 관련한 다양한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의 뒷부분에 실린 해제부터 읽는 방법을 권한다. 전문가들의 대화를 엮은 책인 만큼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170개가 넘는 용어 정의와 시각자료, 기술적 쟁점에 대한 설명, 관련 고전 에세이도 실려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