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생기면 늦다"…'항목별 점수'까지 매긴 소름 돋는 전략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6-08-29 18:00   수정 2026-08-29 18:15

"노조 생기면 늦다"…'항목별 점수'까지 매긴 소름 돋는 전략 [김대영의 노무스쿨]

대형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는 매장별로 '노조 조직화 위험도'를 점수화했다. 이직률·인종 다양성·인사부서 고충처리 빈도·노조 사무실과의 거리·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이력 등 20여개 지표를 통해 노조 결성 가능성을 예측하는 점수를 산출한 것이다. 매장이 있는 지역 실업률·빈곤율도 점수화 과정에 반영됐다. 노조 깃발이 오른 뒤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데이터를 토대로 조직화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는 데 공을 들였다.

미국 기업의 노조 전략이 '사후 대응'에서 '상시 감시·사전 예측'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노조 설립 움직임이 나타난 뒤 회유·위협·보복을 동원했다면 최근엔 업무용 앱·전자기기·사내 데이터·알고리즘을 활용해 직원 여론·동향을 파악하고 조직화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확산하는 중이다.
美기업들 '노조 회피'에 연간 17억달러 지출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국제노동브리프'에 따르면 미국인의 노조 지지율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노동절을 앞두고 나온 갤럽 조사에선 응답자 중 68%가 노조를 지지했다. 1965년 71% 이후 2009년 48%로 곤두박질쳤던 노조 지지율은 2021년 이후 반등했다. 2017년 조사에서도 당시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의 48%가 노조가 생기면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조직률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전체 노조 조직률은 10%에 그쳤다. 민간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5.9%로 반토막 났다. 노동시장과 고용관계의 변화, 노사관계 제도의 경직성, 사용자 측 반노조 전략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미국에선 사용자의 강한 반대와 전방위적 노조 저지 전략이 다른 선진국보다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다.

노조 결성을 막는 '노조 회피 산업'은 1970년대 성장했다. 국제경쟁이 심화하면서 비용 절감 압력, 규제 완화·민영화, 기업 지배구조 변화, 유통·육류가공 등 무노조 업종 성장이 맞물린 영향이다.

1980~1990년대엔 노조 조직화 캠페인에 직면한 사용자 3분의 2 이상이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할 만큼 관련 자문이 표준 관행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미국 기업이 '노조 회피' 자문을 위해 컨설턴트·로펌에 지출한 비용은 연간 17억달러(약 2조3400억원)로 추산됐다.

노조 대응 전략도 전문화·내부화됐다. 대형 컨설팅업체·로펌은 의료, 카지노·호텔, 출판, 비영리, 교육 등 업종별 전문성을 갖추고 라틴계·흑인·여성 노동자 등 특정 집단별 대응 기법을 세분화했다. 월마트·홈디포 같은 무노조 대기업은 아예 내부에 전담 인력을 뒀다. 노조 대응이 일회성 캠페인에서 상시 경영관리로 바뀐 것이다.

노조 선거가 시작되면 미국 사용자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근무시간에 노동자를 모아 노조 가입 위험을 설명하는 회의나 관리자 개별 면담을 통해 회유·심문하는 식이다. 임금 인하나 외주화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노조 조직화를 주도한 직원을 해고하는 보복 조치가 이뤄질 때도 있다.

반대로 승진·성과급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해 노조를 향한 지지를 약화시키는 데도 힘을 준다. 2016~2017년 진행된 노조 선거 캠페인을 분석한 결과 41%에서 이 같은 사용자 측 노동법 위반 사례가 발생했다.
과거 '노골적 저지'서 최근 '디지털 감시'로
최근엔 노골적인 노조 저지 전략보다 '디지털 감시'에 힘을 준다. 선거 과정에서 사용자가 감시 수단을 쓴 비율은 1999~2003년 14%에서 2016~2021년 36%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소셜미디어 추적뿐 아니라 페쇄회로(CC)TV, 출입카드, 위치정보시스템(GPS), 사내 컴퓨터,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한다.

아마존은 2022년 뉴욕 JFK8 물류센터 노조 선거 과정에서 물의를 빚었다. 컨설팅 업체를 통해 노조 조직가 소셜미디어 계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한 사실이 알려져서다. 월마트는 2012년 블랙프라이데이 파업 당시 참가 예정자의 이동 경로를 지도화하기도 했다.

작업장의 디지털화는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다. 아마존의 업무용 앱 'A to Z', 스타벅스 근무 스케줄링 시스템 '파트너 아워스'처럼 출퇴근·스케줄·급여·공지·소통에 필수적인 사내 플랫폼이 반노조 메시지를 반복 전달하거나 노동자 의견을 파악하는 통로로도 활용된다. 스타벅스에선 스케줄링 앱을 통해 노조 조직가와 우호적인 노동자의 근무시간표를 바꿔 다른 직원들과의 접촉 기회를 줄인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데이터는 조직화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데도 활용된다. 홀푸드는 20여개 지표로 매장별 조직화 위험을 점수화했고 아마존도 설문 데이터·임금 인상 시점 등을 결합해 노조 조직화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미리 식별했다. 예측 시스템으로 노조 조직화 가능성이 포착되는 단계에서 관리·대응하는 것이다.
"한국 노사관계서도 데이터 활용 규율 논의해야"
국내에선 앞선 사례와 결이 다르지만 기업 리스크를 사전 포착하는 설루션(솔루션)이 최근 출되기도 했다. 블라인드는 13년간 축적한 행동 패턴을 활용해 리스크 신호를 감지하는 '블라인드 AI'를 선보였다. 블라인드 AI를 활용하면 구성원 이탈 약 6개월 전부터 재직자 행동 데이터를 통해 '이탈 신호'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사용자가 "지난 한 달 보상 만족도 점수와 부정 여론의 핵심 원인, 회사가 즉시 취할 수 있는 액션 3가지를 보고서로 만들어줘"라고 지시할 경우 보상 만족도 점수, 부정 멘션 비중, 이탈 의향 동조 등 핵심 지표가 제공된다. 블라인드는 익명화된 데이터만을 활용해 가입자 신원 특정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블라인드는 개인을 식별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내부에 저장하지 않는 구조로, 블라인드 직원조차도 작성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블라인드 데이터를 활용하는 AI 역시 개별 작성자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나 단서를 알 수 없다"며 "블라인드 AI는 구성원 요구를 기업이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 구성원의 목소리를 보호하고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블라인드의 궁극적 목표를 훼손하는 어떠한 방식의 활용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에서도 데이터 활용의 경계를 규율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연구원(저자 강경희 미국 코넬대 산업노동관계대학 박사과정)은 "앞선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 한국 노사관계에서도 고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 활용과 집단적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데이터 활용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설정할 것인지, 기업이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할 때 이를 어떻게 평가하거나 규율할 것인지 등이 다뤄져야 할 질문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