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 작가’로 불리는 윤병락 화가의 전시 ‘시간의 계절(The Season of Time)’이 지난 25일부터 서울 청담 보자르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작가가 탐구해온 사과 연작을 한 자리에서 마주하는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구니에 한가득 담긴 사과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쏟아져내릴 듯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탐스럽게 익은 진홍빛 사과부터 청량한 능금빛, 계절의 경계에서 노란 기운을 머금은 과실까지. 사과 표면의 결을 따라 시간과 계절의 순환이 펼쳐진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극사실주의 사과로 유명한 윤병락에게 사과는 유년의 기억이자 자연스러운 삶의 궤적이다. 지천이 과수원이었던 경상북도 영천에서 자란 배경이 자연스럽게 작가를 이끌었다.
윤병락의 사과를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은 ‘시선’과 ‘변형 화판(Shaped Canvas)’두 가지로다. 우선 작가는 전통적인 정물화의 평범한 눈높이를 거부하고 대상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俯瞰) 시점을 택했다. 관람객이 실제 사과 상자를 바로 앞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생생한 입체감을 유발하는 장치다.
작가는 사각형이라는 틀에 박힌 캔버스도 거부한다. 작품의 구도와 윤곽에 맞춰 직접 화판의 외곽선을 오린다. 예를 들면 사과의 둥근 곡선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상자를 감싼 신문지가 삐져나오고 구겨진 형태대로 캔버스 자체를 조형하는 방식이다.
그가 처음부터 사과에 몰두했던 건 아니었다. 2002년 무렵 우연히 사과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됐다. 2004년, 나무 상자에 쌓인 과일에서 영감을 얻으며 지금의 작법을 갖췄다. 작가는 사과의 생생한 지질감을 포착하기 위해 철마다 수십 상자의 사과를 화실에 들여놓고 관찰한다. 과육의 반질거리는 광택은 물론 꼭지 주변의 미세한 굴곡과 자잘한 반점, 얼룩과 흠집까지 집요하게 살핀다.
그가 일군 화폭에는 한 알의 과실이 맺히기까지의 서사가 담겨 있다. 과수원을 가꾸던 아버지, 자식 교육을 위해 과일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비바람을 견디며 과일이 무르익어간 시간이 녹아들었다. 전시는 오는 9월 30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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