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를 계기로 잠실야구장이 지어졌다.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거치며, 주경기장과 함께 지난 40여 년간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상징하는 무대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그 잠실야구장이 올해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032년 ‘잠실 스포츠·MICE 복합단지’ 내 잠실돔구장으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새 돔구장이 들어서면 이런 불편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좌석은 국내 최대 수준인 3만 석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지금의 잠실 야구장엔 돈으로 사기 힘든 낭만이 있었다. 풀내음이 풍기는 따뜻한 봄날 햇볕 아래에서 경기를 보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구를 즐기던 기억이다.

잠실야구장에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만들려 했던 당시 건축가들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대형 경기장을 설계하면서 건축가들은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한국적 미감을 현대 건축에 녹여내려고 했다. 대아건축의 김인호 씨가 설계한 잠실 야구장은 내야석을 늘리고 외야석을 줄이면서 내야 관중석 쪽은 높게, 외야 쪽은 낮게 배치했다.
마치 접시를 손바닥으로 받친 뒤 살짝 기울인 듯한 모습이다. 이 덕분에 경기장 안에서는 외부 도시풍경이 원형 프레임 속 그림처럼 펼쳐진다. 반대로 경기장 밖에서는 관중이 커다란 원 안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강강술래의 곡선과 수평으로 놓인 장구를 떠올리게 한다.
좌석 규모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도 주말이면 2만3000여 석이 매진된다. 프로야구 관중이 계속 늘어나는데 고작 3만 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돔구장이라는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에는 5만 석 안팎의 실내·개폐형 돔구장이 10여 개에 달하고, 일본에도 4만 석 이상을 수용하는 돔구장이 4곳이나 있다.

더구나 오늘날 돔구장은 대형 콘서트와 국제 이벤트를 끌어들이는 문화 인프라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세계적인 K팝 아티스트의 해외 투어에는 5만~10만 명이 몰리고, 공연도 대부분 대형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반면 국내 대형 실내공연장은 2만 석 정도로 수용 규모에 한계가 있어 대규모 공연은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같은 대형 야외 스타디움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도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K팝 공연과 국제 행사를 연중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대형 돔구장이 절실하다. 현재 3만 석 규모는 인접 MICE 시설을 포함한 전체 마스터플랜과 맞물려 있어 좌석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잠실이라는 장소가 지닌 상징성과 접근성을 생각한다면 4만 석 안팎으로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잠실 야구장은 지난 40여 년간 단순히 야구 경기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 서울 스포츠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2032년 문을 열 새 잠실 돔구장도 단순히 ‘비를 맞지 않는 야구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K팝과 공연 문화까지 품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서울을 떠올렸을 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건축적 상징성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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