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모래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입력 2026-08-31 18:07   수정 2026-09-01 01:26

요즘은 문장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인공지능(AI)에 몇 줄을 던져 보곤 한다. 어색한 문장을 다듬어 달라고 하면 금세 고쳐 주고, 긴 자료를 넣으면 요점을 추려준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답까지 내놓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똑똑해 보이는 프로그램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답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뜻밖에도 모래가 있다.

인공지능의 가장 깊은 곳에는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규소)은 모래와 암석에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인간은 이를 고순도로 정제해 얇은 원판인 웨이퍼를 만들고, 그 위에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회로를 새긴다. 회로를 이루는 것은 전기의 흐름을 켜고 끄는 초소형 스위치, 트랜지스터다. 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전류를 흘리거나 끊는 것이다. 컴퓨터는 이 두 상태를 0과 1의 신호로 처리해 글과 그림, 소리를 표현한다.

이 단순한 스위치가 수천억 개 모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엔비디아의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에는 2080억 개, 차세대 루빈에는 336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간다. 루빈 한 개에 들어가는 스위치를 우리나라 인구에게 나눠 준다면 한 사람당 약 6500개씩 돌아가는 셈이다.

트랜지스터 하나하나는 여전히 전류를 켜고 끌 뿐이다. 하지만 수천억 개가 눈 깜짝할 사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해낸다. 그 위에서 학습된 AI 모델이 작동하면서 기계는 사람의 말을 이해한 듯 답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프로그램까지 만든다. 모래에서 시작한 작은 스위치가 모여 오늘날의 AI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래된 창조 이야기가 떠오른다. 창세기는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다고 전한다. 생명 없는 물질에 숨결이 더해져 인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인간은 모래에서 실리콘을 얻고, 그 위에 회로를 새기고, 알고리즘을 더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를 만들고 있다. 물론 AI가 정말 인간처럼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생명체도 아니고, 스스로 삶의 목적을 정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래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생명 없는 물질에서 시작한 기계가 사람과 대화하고, 우리가 머리로 해 오던 일의 일부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신했다면 AI는 이제 머리로 하던 일까지 넘본다. 글을 쓰고 자료를 분석하고 답을 찾아낸다. 그러다 보면 ‘기계가 정말 생각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당연하게 써 온 ‘생각한다’는 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요즘 AI에 질문을 던지고 화면에 문장이 떠오르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그 뒤에 있는 모래를 떠올린다. 흔하디흔한 모래가 수많은 과정을 거쳐 내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익숙하던 AI도 잠시 낯설게 보인다. 하지만 모래는 여전히 모래다. 달라진 것은 그 평범한 물질 위에 지능을 새긴 인간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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