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큰 숲의 도시’. 나는 은평구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은평에는 북한산을 필두로 크고 작은 여섯 개의 산이 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정해진 등산로와는 다른 작은 길을 만날 때가 있다.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 시작해, 두 사람 세 사람 발길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또 하나의 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처음에는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길도 사람들이 계속 걸으면 선명해진다. 누군가 먼저 걸었기에 뒤따르는 사람은 덜 망설이고 조금 더 쉽게 내디딜 수 있다. 나는 산을 오를 때마다 그 길을 처음 낸 사람을 생각한다. 내 삶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은평구에서 내리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미경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과 함께 다닐 때면 사람들은 우리를 ‘양미경’, 혹은 ‘미경이 세트’라고 불렀다. 이미경과 김미경. 두 미경이 함께 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선후배 여성 정치인으로서 우리는 오랜 시간 정치의 현장에서 웃고 울고 고민을 나눴다. 무엇보다 먼저 길을 내어온 선배의 존재는 후배인 내게 든든한 힘이 됐다.
올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한 역사적인 해다. 나 역시 ‘서울 최초의 여성 3선 기초단체장’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내게 ‘최초’라는 말은 자랑이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여성 최초의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장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여성에게 지방정부의 수장이 되는 길은 아직 넓지 않다. 기초단체장 중 여성 당선인의 비율은 4%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먼저 걸어온 길이 다음 사람에게는 조금 덜 낯선 길이 되기를 바랐다. 후배 여성 정치인이 역량을 펼치고, 여성 공직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그 길을 넓히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현재 은평구 전체 국·과장 67명 중 33명, 즉 49.3%가 여성으로, 서울시 내에서도 독보적인 성평등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사람은 보지 못한 것을 꿈꾸기 어렵다. 나 역시 앞선 길을 걸어간 여성 정치인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경 전 의원이 내게 보여준 길도 그랬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차례 기초의원과 두 차례 광역의원을 거쳐, 세 차례 구청장에 당선된 나의 길이 뒤따라올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 역시 넘어야 할 벽이 여전히 많지만 후배 여성 정치인의 손을 잡고 함께 극복하고 싶다. 언젠가 뒤따라오는 사람이 내가 만든 길조차 의식하지 않고 더 멀리 걸어가기를 바란다. ‘여성 최초’라는 말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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