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프리즈)은 전혀 기대가 안 된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KIAF-프리즈가 열린 2일 아침까지도 미술계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근거는 충분했다. 세계 미술시장은 수 년간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고,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2022년 1회 행사 이후 KIAF-프리즈의 출품작 가격대는 해마다 내려앉는 추세였다. 올해 프리즈에는 페로탕과 마시모 데 카를로 등 1회 때부터 행사에 참여했던 인기 갤러리들까지 발을 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날 행사장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개막 직후부터 수억원대 작품 판매 소식이 이어졌다. 화려한 초고가 작품 대신 팔릴 만한 작품을 골라 온 갤러리, 한국 작가와 톡톡 튀는 젊은 작가를 앞세운 부스가 실적을 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KIAF-프리즈 서울이 ‘실속 장터’로 변신했다”는 호평이 나왔다.

애초에 고가 작품을 들고 온 화랑이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초고가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국내외 화랑들 사이에 뿌리박힌 영향이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큰손 컬렉터 A회장도 올해 KIAF-프리즈에서는 5억원 안에서만 작품을 사기로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갤러리들 표정은 밝았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작품 판매가 줄을 이었다. 인기가 가장 뜨거운 작가는 서도호였다. 지난달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시작한 서도호의 실 드로잉을 내건 싱가포르 STPI 부스에서는 수억원대 작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화랑들의 실적 개선에는 환율 하락도 한몫했다. 탕컨템포러리는 우국원의 작품을 9만달러(약 1억2000만원)에 팔았다. 한동민 탕컨템포러리 팀장은 “작품을 달러로 거래하는 화랑들이 많은데, 환율이 1500원대에서 1300원대로 하락한 덕분에 컬렉터들의 ‘체감 가격’이 확 싸졌다”고 말했다.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도 환율 하락의 수혜를 봤다. 제이슨함은 문을 열자마자 윤형근의 작품을 2억원에 팔았고, 화이트큐브는 박서보의 작품을 4억원대에 판매했다. 학고재갤러리에서는 이준의 작품이 1억5000만원에, 송현숙의 회화가 1억원에 팔렸다. 우찬규 학고재 회장은 “올해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해라서 그런지 해외 미술관 관계자들을 행사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KIAF는 고급화에 승부를 걸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정구호 디자이너가 변화를 주도했다. 통로는 지난해보다 훨씬 넓어졌고, 바닥은 고급스러운 질감을 내기 위해 검은색으로 바꿨다. 한국의 '잔칫상'을 콘셉트로 꾸민 식당가는 KIAF 전용 초콜릿 등 먹거리를 즐기려는 관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판매도 따라왔다. 국제갤러리는 유영국의 작품을 6억원대에,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을 6억원 안팎에 팔았다. 갤러리밈은 정정엽의 작품을 2200만원에, 권인경의 작품을 2400만원에 판매했고 황호석의 작품은 개막 전에 팔렸다. 이성훈 화랑협회장은 “올해 과감한 변화를 많이 시도했는데, 관람객이 많이 온 걸 보니 다행히도 성공을 거둔 것 같다”며 “컬렉터층이 갈수록 젊어지는 만큼 계속 혁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강은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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