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데이터센터로 번지고 있다. 해외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며 각국에 AI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각 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과 연대해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을 조직하는 가운데 중국은 이에 맞서 ‘디지털 실크로드’를 닦고 있다. 경쟁 승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관련 부품 공급 규모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현지시간) 10년 만에 이집트를 찾아 압둘팟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났다. 이번 방문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이집트 정부의 데이터센터 사업 수주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집트 정부에 1년 내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자체 개발한 AI 가속기 ‘어센드’ 시리즈를 투입하는 한편 중국 AI 기업 아이플라이텍과 함께 도시 감시를 비롯해 정부용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도 담겼다.
화웨이의 제안을 파악한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 AMD, 마이크로소프트가 컨소시엄을 조직해 이집트에 대안을 제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기술력이 떨어지지만 중국의 제안을 이집트가 무시하기는 어렵다.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흐마드 아부두 부연구위원은 “기술 수준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금융 지원까지 전폭적으로 해주는 중국의 기술이 이집트로서는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금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공략 중인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맞닿아 있다. 중국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0년간 이집트 신행정수도와 교통망 등 인프라 구축 사업에 참여했다.
데이터센터 거점을 확산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도 일대일로 사업의 한 축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산하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 이후 디지털 실크로드 무게중심을 광케이블, 통신장비 등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서 기술 생태계 확산으로 옮겼다.
두 나라는 데이터센터와 관련한 공급망 동맹 조직에도 적극적이다. 우선 미국은 첨단 기술국을 중심으로 ‘팍스 실리카’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일본, 인도 등 총 24개국과 유럽연합(EU)으로 구성된 협력체다.
이에 맞서 중국은 7월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28개국과 함께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창립했다. 같은 달 이란, 베트남 등 8개국이 합류했으며 지난달 1일에는 방글라데시가 옵서버(참관국)로 참여하기로 했다.
두 진영에 중복으로 가입한 국가는 카자흐스탄이 유일하다. WAICO 창립 회원인 우즈베키스탄도 최근 팍스 실리카 가입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팍스 실리카와 WAICO는 기반으로 삼는 산업·공급망 구조가 다르다. 팍스 실리카는 기술, 자원 등 참여국 비교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호주와 칠레 등에서 핵심 광물을 채굴하고 반도체 장비는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조달하는 식이다.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전력기기, 케이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배터리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 중이다. 하지만 WAICO는 핵심 광물 채굴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급망이 중국 중심으로 움직인다. 애초에 데이터센터를 교두보로 중국의 AI 기술 스택(체계)을 확산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통신망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응용서비스 등을 묶어 공급한다. 호환성과 운영 연속성 때문에 중국 기술의 추가 채택을 유도하고 대상 국가가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록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두 진영은 서로의 ‘초크 포인트’(병목점)도 쥐고 있다. 핵심 광물은 여러 국가에서 채굴할 수 있지만 정제만큼은 중국 의존도가 높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갈륨, 흑연, 망간, 희토류는 중국이 세계 정제 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이 정제 기술을 내재화하려는 이유다. ESS, 광통신 등 일부 분야는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중국의 약점은 반도체 장비와 첨단 칩이다. 화웨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이 핵심 반도체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수율과 성능 면에서 한계가 여전하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첨단 패키징 등에서도 글로벌 선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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