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ld(낙찰)!”를 외치며 경매사가 망치를 내리친다. ‘탁’하는 짧은 망치 소리와 함께 수억 원, 때로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보석이 움직인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 보석에게는 또 하나의 소장 이력이 붙는다. 세계 각국에서 온 보석 컬렉터와 딜러의 거대한 자본과 안목이 교차하는 소더비(Sotheby’s) 홍콩 경매장. 그 무대의 중심에 경매사 유니 킴(Uni Kim)이 서 있다. 한국인 최초의 소더비 주얼리 경매사다.
1744년 런던에서 출발한 소더비는 세계적인 미술 작품뿐 아니라 역사적인 보석과 명문 메종의 주얼리를 경매 시장에 소개해 왔다. 유니 킴은 소더비 홍콩 주얼리 부문의 헤드 오브 세일(Head of Sale)다. 보석의 희소성과 품질, 제작자와 소장 이력에 숨은 가치를 읽어내는 스페셜리스트이자 경매 현장의 지휘자다. 아시아 하이 주얼리 시장을 이끄는 유니 킴을 인터뷰했다.
▶ 소더비 최초의 한국인 경매사로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주얼리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2016년 소더비에 입사했다. 처음부터 경매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소더비에서 경매사가 되려면 수석 경매사의 지도를 받으며 오랜 훈련을 거쳐야 한다. 훈련받는다고 모두 경매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원래 토론과 대중 연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입사 초기 아시아의 첫 소더비 경매사이자 당시 국제 주얼리 부문 회장이었던 퀙 친 요(Quek Chin Yeow)와 함께 일하며 경매사의 꿈을 키웠다. 그의 곁에서 실무를 배우고 훈련을 거친 끝에 마침내 경매대에 오르게 됐다.”
▶ 직접 망치를 들었던 첫 번째 경매는 언제였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21년 9월, 처음으로 경매사 단상에 올랐던 그해 시즌은 시작부터 잊을 수 없다. 당시 홍콩에는 일주일 사이에 가장 강력한 단계인 태풍 10호 경보가 두 번이나 발령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었다. 경매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중요 스태프들이 호텔에 머물며 출근길을 조율해야 했을 만큼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정말 쉽지 않은 데뷔 시즌이었다.
다행히 모든 준비가 맞물려 경매사로서의 첫걸음을 무사히 마쳤다. 그때 맡았던 첫 경매가 바로 ‘매그니피센트 주얼리(Magnificent Jewels)’ 부문이었다. 첫 번째 출품작이었던 티파니의 ‘슐럼버제 해마 브로치’는 아직도 생생하다. 카탈로그(경매 도록)를 준비하며 그 브로치가 티파니의 저서에 있었던 것을 공부하던 기억이 있어서 더 뜻깊었다.
당시 첫 경매의 최고가 품목은 37억 원 상당의 다이아몬드였다. 엄청난 규모의 자산이 오가는 자리인 만큼 당연히 긴장됐지만, 경매사로서 혹독하게 훈련받은 것들을 실전에서 온전히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들뜨기도 했다.”

▶ 경매사의 하루 또는 한 달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가장 필요한 역량은?
“경매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출장이 잦다. 소더비 아시아에서 경매사뿐만이 아니라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헤드 오브 세일(Head of Sale)을 맡고 있어, 바쁠 때는 한 달 중 집에 머무는 날이 닷새도 되지 않을 정도다. 나머지 기간에는 경매 전시를 준비하고 시장 동향을 살핀다. 보석·광물 관련 서적을 공부하거나 하이 주얼리 행사와 박물관의 컬렉션 관련 대담에도 참여한다. 시즌마다 일정이 달라서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직업이다.
경매사에게는 암산 능력과 함께 사람의 심리와 반응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도 중요하다. 경매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임기응변 능력 역시 중요하다.”
▶ 소더비에서는 어떤 주얼리 경매가 열리나. 일반적인 미술품 경매와의 차이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의 주요 시즌을 중심으로 하이 주얼리 경매인 ‘매그니피센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와 온라인 파인 주얼리 경매가 열린다. 주요 경매는 뉴욕과 제네바, 홍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매그니피센트 주얼스에는 희소성과 작품성, 소장 이력이 뛰어난 대표작이 출품된다. 이 경매에 선보일 주얼리를 선별하고 전체 구성을 기획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다. 파인 주얼리 경매는 해당 시기의 흐름과 수요에 맞춰 보다 폭넓은 작품과 가격대로 구성한다.
주얼리 경매와 미술품 경매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매그니피센트 주얼스가 미술품 경매의 이브닝 세일(Evening Sale)처럼 희소성과 중요도가 높은 대표작 중심이라면, 파인 주얼리는 작품과 가격대의 범위가 넓어 신규 컬렉터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데이 세일(Day Sale)에 가깝다.”

▶ 세계적인 주얼리 컬렉터들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나.
“작품의 중요성은 그것이 탄생한 시대와 맞물려 있다. 당시의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트렌드와 만나는 지점을 분석한다. 동시에 컬렉터 스스로 감정적·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시대와 시장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과 개인의 취향이라는 미시적인 관점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컬렉션의 방향이 달라진다. 세계적인 컬렉터들을 지켜보며, 이 두 가지 기준을 섬세하게 조율할수록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도 깊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경매에 출품할 작품을 선별하고 큐레이션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도 이와 같다.”
▶ 가장 인상 깊었던 낙찰은 언제인가.
“소더비에서 10년간 일하며 여러 세계 기록을 경신한 작품들을 마주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무래도 ‘CTF 핑크 스타(CTF Pink Star)’다. 2017년 경매 당시에는 ‘윌리엄슨 핑크 스타’라는 이름으로 출품됐다. 7,120만 달러(당시 약 800억 원)에 낙찰돼 다이아몬드와 젬스톤, 주얼리를 통틀어 세계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낙찰자인 주대복(Chow Tai Fook)이 이후 회사명의 이니셜을 붙여 ‘CTF 핑크 스타’로 이름을 바꿨다.
세계에서 가장 큰 59.60캐럿의 팬시 비비드 핑크, 내부 무결점 다이아몬드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경매 도록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직접 조사했기 때문에 그 시즌이 더욱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 지금까지 실물로 본 보석이나 주얼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18년 소더비 제네바에서 열린 부르봉 파르마 왕가의 보석 경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세계 각지에서 프리뷰 전시를 진행하며 마리 앙투아네트가 소유했던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18~19세기 유럽 앤티크 주얼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왕실의 티아라와 훈장 등 다양한 보물이 출품됐는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소유했던 천연 진주와 다이아몬드 펜던트는 당시 천연 진주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펜던트는 3,642만7,000스위스프랑(당시 약 410억 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갔던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카락을 보관한 작은 메모리얼 링이었다. 크기는 작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한 사람의 삶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에 더욱 깊이 와닿았다.”

▶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에 낙찰된 사례가 있었다면.
“2017년 한 주얼리 컬렉터가 경매를 의뢰한 빈티지 비취 목걸이가 있었다. 작품을 조사하던 중 미국의 주얼러 레이먼드 야드(Raymond Yard)의 서명을 발견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이 목걸이가 울워스 가문의 노먼 베일리 울워스(Norman Bailey Woolworth)에 판매됐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바버라 허턴이 상속한 것으로 유명한 바로 그 울워스 가문이었다.
작품 조사를 통해 이러한 레이먼드 야드와 울워스 가문의 소장 이력을 경매 도록에 담을 수 있었다. 작품은 추정가의 20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치열하게 이어졌던 당시의 입찰 경쟁이 아직도 생생하다.”
▶ 최근 경매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보석은?
“현재는 루비와 사파이어가 강세다. 루비 가운데서는 미얀마산 미가열 루비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피전 블러드(Pigeon’s Blood)’ 컬러로 분류된 루비는 컬렉터들이 꾸준히 찾는 카테고리다. 모잠비크산 루비도 주목받고 있다. 55.22캐럿의 ‘에스트렐라 데 푸라(Estrela de FURA)’가 2023년 소더비 뉴욕에서 낙찰된 이후, 모잠비크는 루비의 주요 산지로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사파이어 역시 미가열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다. 산지별로는 카슈미르와 미얀마, 스리랑카, 마다가스카르산 순으로 컬렉팅의 중요도가 높다. 특히 카슈미르 사파이어는 광산에서 생산이 중단된 지 오래됐고, 전통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특유의 색과 광물학적 내포물을 지니고 있어 지금까지도 컬렉터들의 선망 대상이다.”

▶ 하이 주얼리를 자산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할 기준은.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공신력 있는 감정서를 갖춘 작품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유색 보석은 SSEF와 Gubelin, AGL, 다이아몬드는 GIA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감정서를 확인해야 한다. 중요한 보석은 두 곳 이상의 감정서를 갖춘 경우가 좋다. 사인드 주얼리와 빈티지 작품은 제작 기록과 소장 이력, 진위를 증명할 자료도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메종이나 공인 기관이 발행한 진품 확인서(Authenticity Report)가 함께 있는 것이 좋다.”
▶ 경매를 통해 주얼리를 구입하는 매력은 무엇이며, 국내에서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
“경매는 잘 큐레이팅된 하나의 전시와도 같다. 경매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큐레이션의 방향과 시대적 배경, 각 작품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시장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빈티지와 앤티크 주얼리, 특별한 소장 이력(Provenance)을 지닌 작품이 주로 경매를 통해 소개된다. 희소한 예술품을 원하는 컬렉터에게 주얼리 경매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다. 컬렉션의 출발점이 될 만한 기본적인 작품도 매 시즌 포함되기 때문에 처음 주얼리 컬렉션을 시작하는 새로운 컬렉터에게도 적합하다.
소더비 웹사이트나 앱에서 계정을 만들고, 경매 카탈로그와 컨디션 리포트를 확인하고 입찰자로 등록하면 된다. 경매장에 직접 참석하거나 온라인·전화·서면 위임 입찰 방식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궁금한 점은 담당 스페셜리스트에게 문의할 수 있다.”

▶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보석이나 주얼리 스타일은?
“대부분의 컬렉팅 여정이 그렇듯 관심의 대상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크게는 앤티크 주얼리에 관심이 많다. 고대 이집트의 파이앙스 장신구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에나멜 펜던트까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을 좋아한다.
한국의 장신구 중에서는 삼국시대의 유리구슬과 옥 장신구에 관심이 많다. 경옥과 카닐리언, 아마조나이트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곡옥을 특히 좋아한다. 현대 주얼리 컬렉터들이 주로 다루는 최근 150여 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아르데코 주얼리와 19세기 말의 은을 사용한 세팅을 선호하는 편이다.”
▶ 해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이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로운 굿즈가 출시됐는데 바로 구매하지 못할 때 가장 아쉽다. 개인적으로 삼국시대의 금관과 곡옥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국립경주박물관 같은 곳을 자주 찾지 못할 때도 한국이 그립다.”

그녀의 망치가 내려오는 시간은 단 1초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경험과 안목이 필요하다. 유니 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경매사는 낙찰을 선언하고 경매를 진행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석에 축적된 가치를 발견해 다음 세대에 연결하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유니 킴은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는 변화 그 자체(The only thing that doesn’t change is change)”라고 말한다. 그녀의 망치가 ‘탁’ 하고 내려오는 순간, 보석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다. 지나온 역사를 품은 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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