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놓친 사람들…금융의 눈을 다시 묻다, 신간 <포용금융>

입력 2026-09-04 14:10  



은행에서 “대출이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 사람의 금융생활에는 작은 균열이 생긴다. 당장 돈이 필요하면 더 비싼 대출을 찾는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 생활비와 사업자금이 부족해지고 또 돈을 빌린다. 연체가 시작되면 신용점수는 떨어지고 은행 문은 더 단단히 닫힌다.

금융정책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는 신간 《포용금융》을 통해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금융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아주대 교수,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이렇게 묻는다. 그 사람은 정말 돈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이었을까, 금융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포용금융이라고 하면 흔히 저신용자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착한 금융’을 떠올린다. 저자는 이 통념부터 뒤집는다. “포용금융은 돈을 더 많이 빌려주자는 주장이 아니다.”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추가 대출을 내주는 것은 포용이 아니라 부실을 키우는 일이다. 포용금융은 위험을 외면하는 금융이 아니라 위험을 더 정확하게 읽어내는 금융이라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신용점수와 소득, 담보, 과거 상환 이력을 본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금융 이력이 짧은 청년, 담보가 부족한 소상공인은 기존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저자는 ‘평가하기 어렵다’와 ‘위험하다’는 같은 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계좌의 현금 흐름과 매출, 플랫폼 거래, 반복적인 납부 기록까지 들여다보면 기존 신용평가가 놓친 상환능력을 찾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의 핵심 개념은 ‘회복 사다리’다. 은행에서 거절된 사람에게 적절한 금융을 연결하고, 고금리 빚은 갈아타게 한다. 일시적인 위기에는 상환 조건을 조정하고, 갚을 능력을 잃었다면 추가 대출 대신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으로 이어준다. 이후 신용과 소득이 회복되면 다시 정상 금융으로 돌아오게 한다. 금융에도 일종의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금융정책의 성적표도 바꾸자고 제안한다. 얼마나 많은 돈을 공급했느냐보다 고금리 부채와 상환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 신용이 회복됐는지, 몇 명이 정상 금융으로 돌아왔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전작 《생산적 금융》이 “돈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를 물었다면 이번 책은 “금융은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하나가 돈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돈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포용금융’은 더 이상 온정적이거나 시혜적인 금융을 뜻하는 말로 읽히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인정 많은 금융이 아니라 눈 밝은 금융이다.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돈을 빌려주지 않되, 갚을 수 있는 사람을 낡은 잣대 때문에 놓치지도 않는 것. 결국 금융의 실력은 사람과 위험을 얼마나 정확히 가려내느냐에서 갈린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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