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이렇게 집을 지을 땅이 많았던가. 서울 용산공원에 청년주택을 짓겠다는 정부 발표 이후 ‘땅 찾기 레이스’가 시작됐다. “용산공원은 1㎠도 양보할 수 없다”는 서울시는 강남구 일원동 탄천물재생센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구로구 차량기지 이전 부지를 거론했다. 용산구 역시 한국은행 직원 숙소와 외교부 주차장, 경리단 일대 부지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노원구 태릉골프장, 도봉구 성균관대야구장, 서초구 국립외교원 등 기존에 검토되던 부지까지 포함하면 서울에서 거론되는 후보지만 수십 곳에 이른다. 놀라울 정도다.개별 부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논란의 중심인 용산공원을 보자. 미군 반환도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반환 작업이 끝나면 토양 정화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시와 용산구 등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도 거세다.

탄천물재생센터 일대도 마찬가지다. 인근 코원에너지 부지와 동부도로사업소, SETEC 등 민간 부지를 함께 활용하면 2만 가구 이상 공급이 가능한 핵심 입지로 꼽히지만, 어디로 옮겨갈지조차 정해지지 않아 현실화까지 갈 길이 멀다. 구로 차량기지는 2005년부터 이전을 추진했지만 마찬가지로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진척이 없다.
서울은 성숙한 도시다. ‘글로벌 도시 경쟁력 지수(GPCI)’에서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등에 이어 6위를 차지할 정도다. 이런 도시에서 신규 택지를 발굴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빈 땅처럼 보이는 곳도 각자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섣불리 주택 공급을 결정할 경우 도시계획 전반을 흔들 수 있다.
과거처럼 정부가 발표하고 일방적인 수용과 개발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공유지라고 하더라도 지자체와 주민 반발을 외면할 수 없다. 관계 부처 간 협의 역시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 이후 발표된 서울 도심 내 공급 후보지 31곳 가운데 착공에 들어간 사업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공유지와 유휴부지 발굴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주거용으로 지정된 지역의 고밀 개발은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없을까. 도시는 주택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일자리도 필요하고 상업시설, 호텔, 교통 인프라, 폐기물 처리시설 등 다양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 같은 용도 지역을 축소하고 집만 짓는 방식은 도시 기능을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재건축·재개발 등 기존 주거지를 고도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도시정비사업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새가 양쪽 날개로 날듯 주택시장에서도 공공과 민간의 균형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고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접근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민간 정비사업의 용적률 완화를 검토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집값 상승 우려를 이유로 개발 자체를 막기보다 부작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국공유지와 유휴부지를 통한 공급 확대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다양한 주체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논의를 이어가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다만 실질적인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실현 가능성을 우선 검증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 제안이 반복될수록 시장의 피로감은 커지고 정책 신뢰도는 떨어진다.
주택시장은 수많은 변수가 얽힌 ‘복잡계’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전체 시장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번에 시장을 안정시킬 빠르고 확실한 해법을 찾겠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용산공원에 청년주택을 짓는다고 해서 부동산시장이 안정되는 것도, ‘닥공’(닥치고 공급)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는 조급함이 아니다. 명백한 오답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끈기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부지를 성급히 내놓아 시장 신뢰를 훼손하거나, 상대 의견이라고 검토도 하지 않거나, 민간을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피해야 할 오답이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전제로 더 많이 듣고, 더 치밀하게 검증하며, 점진적으로 해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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