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남긴 것은 슬픔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입력 2026-09-06 21:27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나는 제목부터 마음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의 한 달'. 남은 시간이 정해진 사람의 이야기임을 짐작하는 데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고 오래 남은 감정은 뜻밖에도 슬픔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도현순 작가의 이 그림책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한 달을 그린다. 겉으로는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죽음과 삶, 기억과 애도라는 묵직한 질문을 담았다. 작가는 40여 년간 병원 약사로 일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봤다. 말기 위암을 앓던 시아버지가 남겨질 가족을 위해 마지막 시간을 살아내던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이 작품의 뿌리가 됐다.

책에는 극적인 사건이 없다. 할아버지는 남은 한 달 동안 마당에 꽃을 심고, 손주들과 물을 주며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극적인 화해나 눈물의 고백 대신, 무심히 흘려보냈던 하루하루만 있을 뿐이다. 그 담담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정직한 힘이다.

이 책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 불렀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었다. 나 역시 이 대목에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선명하게 살고 있는가.

작품을 관통하는 상징은 '꽃'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 꽃을 끝내 보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씨앗을 심는다. 스스로 누릴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는 것,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몸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떠난 뒤 꽃이 피면 남겨진 가족은 그 앞에서 다시 그를 마주한다. 꽃은 부재를 증언하는 동시에, 그 부재 안에 여전히 머무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것을 애도의 완성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움을 품은 채 다시 살아가는 것이 애도라고 말한다. 처음엔 꽃에서 빈자리를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면 같은 꽃을 통해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상실이 슬픔으로, 슬픔이 기억으로, 기억이 다시 살아갈 힘으로 옮아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확인했다.
김포=정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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