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후지쓰가 인공지능(AI)용 첨단 반도체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과거 ‘히노마루 반도체’의 한 축이었던 후지쓰가 슈퍼컴퓨터 ‘후가쿠’에서 축적한 기술을 활용해 자체 개발한 CPU를 미국과 아시아에 수출하면서 첨단 로직 반도체 시장에서 재기를 노린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후지쓰는 AI용 첨단 CPU ‘모나카(MONAKA)’를 2027년 이후 일본과 미국,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후지쓰가 첨단 반도체를 외부에 본격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미국 서버업체 슈퍼마이크로컴퓨터에 공급하기로 했으며, 미국 대형 클라우드 기업에도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모나카는 2나노미터 공정을 적용한 CPU로, 소비전력 대비 연산 성능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후지쓰는 슈퍼컴퓨터 후가쿠와 전신인 ‘케이(京)’용 고성능 반도체를 개발하며 쌓은 기술을 활용해 전력 효율을 높였다. 설계는 후지쓰가 맡고 생산은 대만 TSMC가 담당한다.
후지쓰는 2029년께 투입할 차세대 1.4나노 제품의 생산은 일본 파운드리 업체 라피더스에 맡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첨단 반도체 자립을 위해 육성 중인 라피더스와 후지쓰의 협력이 현실화할 경우 일본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후지쓰는 CPU뿐 아니라 모나카를 탑재한 AI 서버도 국내외에서 판매한다. 현재 금융·통신 기업 등 24개사가 시험 장비를 이용해 성능을 검증하고 있으며, 40개사 이상과 도입을 협의하고 있다. 이시카와현 가사시마 공장의 생산 품목도 기존 메인프레임에서 AI 서버 중심으로 순차 전환할 계획이다.
후지쓰는 CPU 외부 판매를 통해 2030년도까지 누적 매출 2500억엔을 올린다는 목표다. 별도로 AI 서버 6만대 판매도 계획하고 있다. CPU와 서버뿐 아니라 AI 개발·운영 플랫폼까지 묶어 제공해 관련 사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AI 확산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도 후지쓰의 재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WSTS)에 따르면 2026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90% 증가한 약 240조엔에 이를 전망이다. AI용 CPU와 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수요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와 제조장비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첨단 로직 반도체에서는 미국과 대만, 한국에 밀려 존재감이 약해졌다. 후지쓰 역시 1980년대 도시바 등과 함께 세계 시장을 주도했지만 2010년대 자체 생산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이번 모나카의 글로벌 판매는 AI 시대를 계기로 일본 반도체 산업이 다시 첨단 로직 시장에 진입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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