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새긴 한 시대의 얼굴…진영 넘은 오윤의 판화들

입력 2026-09-13 16:50  

칼로 새긴 한 시대의 얼굴…진영 넘은 오윤의 판화들


민중미술은 대개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움보다는 사회 변혁을 추구한 작품들이라서다. 오윤(1946~1986)은 예외다. 민중미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목판화는 인정한다. 나무판을 칼로 파서 찍어낸 굵고 거친 선의 '칼맛'은 한국적 아름다움과 함께 한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오윤'은 그의 작고 40주기를 맞아 열린 전시다. 유족이 기증한 오윤 컬렉션 860건 가운데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 300여 점을 골라 작품 31점과 함께 내놨다. 작품과 함께 1986년 첫 개인전을 연 직후 마흔의 나이로 요절한 오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판화를 찍어낸 나무판 원본이다. 나무판에 그림을 새기고 먹을 발라 종이에 찍는 판화는 같은 장면을 여러 장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칼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깊이 지나갔는지를 알 수 있는 건 원판뿐이다. 전시를 기획한 송고운 학예연구사는 "판화는 복제 미술이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원본'을 통해 작가로서의 오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등을 돌린 노동자의 뒷모습을 새긴 '노동의 새벽'(1984)과 관련 자료에서는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오윤이 했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모델은 1972년 만난 노동자다. 1976년 습작 원판을 팠고, 1984년 완성작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시집에 실리면서 유명해졌다.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를 새긴 '대지'(1983)는 아이디어가 판화로 완성되기까지 십수 년의 과정을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은 "어머니라는 소재를 통해 거친 현실에서도 삶을 지켜내려는 민중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984년 가을 간경화로 몸이 나빠진 오윤은 전남 진도로 요양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굿과 탈춤을 소재로 스케치를 여러 장 남겼다. 굿과 춤은 사람의 몸에서 몸으로 이어져 온 만큼, 글과 책보다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게 오윤의 생각이었다.

이듬해 그린 '도깨비'는 그 결과물이다. 광목 위에 고무판으로 찍은 이 그림에서는 춤을 추는 도깨비와 북을 두드리는 도깨비, 씨름을 벌이는 도깨비 등이 어우러져 있다. 몸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곡선은 생명이 품고 있는 기운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는 가로 2m가 넘는 이 작품의 원판이 나왔다.

1986년 그림마당 민에서 연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을 찍은 60분짜리 영상은 처음으로 공개된다. 오윤은 그해 7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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