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석 달 전 8000조원을 넘어섰던 한국 증시의 몸집이 6000조원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질주하던 당시와 달리 최근에 반도체주가 힘을 잃으면서 상승 동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도 고점 대비 각각 31%, 40% 넘게 증발하며 시장을 떠받치던 핵심 축이 흔들리고 있다.
14일 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합계는 5945조2760억원으로 집계됐다. 코스피 시총이 5493조7550억원, 코스닥 시총이 451조521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는 한 달 전인 지난달 14일 6234조7780억원과 비교하면 289조5020억원 줄어든 규모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치닫던 지난 6월 8000조원과 비교하면 석 달 사이에 무려 2000조원가량이 사라진 셈이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국내 증시의 몸집은 가파르게 불어났다. 코스피·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은 지난 4월27일 사상 처음 6000조원을 넘어선 뒤 불과 8거래일 만인 5월11일 7000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6월에는 장중 800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지수도 같은 흐름이다.
코스피는 올해 초 4천피(코스피 4000)로 출발해 1월 첫 5천피를 돌파했고 이후 2월에 6천피도 뛰어넘었다. 이후 미-이란 전쟁 여파로 주춤한 뒤 5월 다시 반도체 중심 강세에 7천피와 8천피를 순식간에 돌파했다. 이후 지난 6월 9천피마저 뛰어넘은 뒤 역대 최고가인 장중 9385.59를 기록했다.
그러나 7월 들어 분위기는 급변했다. 코스피는 7월 한 달간 22.19% 추락하면서 기록적인 급락장을 펼쳤다. 한때 9000선을 넘어선 지수는 7월 들어 5262.77까지 내리기도 했다. 이후 현재 코스피는 저점에서 상당 부분 반등했지만 6000∼7000 사이를 오가며 좀처럼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시가총액 역시 이에 맞춰 6000조원 안팎을 맴돌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증시 시가총액 자체는 여전히 51.17%, 2038조4570억원 늘어난 상태지만 불과 석 달 전 8000조원까지 불어났던 몸집은 최근 6000조원 안팎을 오르내리며 안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두 종목 모두 한때 2000조원을 웃돌던 시가총액이 현재는 1000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날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1455조7234억원으로 지난 6월18일 2119조2750억원까지 불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31.30% 줄어든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이날 1238조1846억원으로, 역시 지난 6월22일 2080조3780억원에 달했던 고점과 비교하면 40.49%가량 줄어든 수치다.
최근 국내 증시는 고금리 장기화 우려와 국제 유가 상승, 지정학적 불확실성, 원화 강세 등 대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앞서 지난 3월부터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본격적으로 고조되고 국제 유가가 급등했을 당시에도 코스피는 초반에만 출렁였을 뿐 5월 이후 반도체 랠리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도체 관련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이전처럼 업종 모멘텀만으로 매크로 부담을 상쇄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특히 외국인 수급이 향후 지수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주 코스피는 미국의 주요 지표와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인상 가능성, 국제 유가, 외국인 수급 변화 등에 영향을 받으며 주 초반부터 변동성 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수가 지난 2월과 비슷한 수준인데도 당시보다 시장 체력이 약해진 배경에 대해 "시중 자금 유입 속도가 떨어졌고 이익 전망치의 상향 속도도 둔화했다"고 진단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 실적 개선 기대 등 기존 호재가 주가에 상당 부분 선반영됐다"며 "현재 주가 수준에서는 과거와 같은 재료만으로 추가 상승을 이끌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실적 모멘텀이나 수요 사이클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외국인 수급도 강하게 돌아서기 어려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세적 반등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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