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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생도 미적분 나머지 공부…'수포자' 키우는 한국

입력 2026-09-29 17:35   수정 2026-09-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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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현장에선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용어가 일반화한 지 오래다. 상위권이라고 해서 수학 교육의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2026학년도 서울대 자연 계열 신입생의 22.4%가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기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AI 혁명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지금 수학 교육의 중요성은 날이 다르게 커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도 국가 경쟁력의 기초를 수학 교육 강화에서 찾는다. 수학 교육이 어렵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수학은 점점 더 미래 세대의 시급한 생존 문제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신 인공지능(AI) 시스템은 수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탄탄한 수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딥러닝 알고리즘의 근간인 경사하강법은 미적분과 선형대수를 결합한 것입니다. 벡터와 행렬은 신경망의 구성 요소이며, 로그 스케일로 성장을 모델링하는 것은 신경망 훈련의 기본입니다.”

2024년 3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새미 벤지오 애플 머신러닝 연구 수석이사, 세바스티앙 부베크 마이크로소프트 연구 부사장 등 AI 분야 리더들이 ‘고등수학 과정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는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고, 사사건건 대립하던 인물들이 AI 시대가 발전할수록 수학 교육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성명서에서 “삼각함수와 피타고라스 정체성(사인 제곱+코사인 제곱=1)은 한물간 ‘구식’ 수학이 아니라 여전히 푸리에 변환과 최소제곱 알고리즘을 비롯한 데이터 과학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며 기초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은 큰 울림을 줬다. 머스크와 올트먼이 수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에도 AI는 거침없이 발전했다. 최근 오픈AI는 1만 개의 내부용 모델을 동원해 인류가 90년 넘게 풀지 못하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 ‘밀레니엄 문제’를 88시간 만에 해결해 세계 수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렇다면 이런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한국 수학 교육의 실태는 어떨까. 국제적으로 수학 교육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에 나왔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추락하는 한국 수학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달 초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 결과를 발표했다. PISA는 2000년부터 3년 간격으로 만 15세 학생(한국의 중3~고1)의 수학, 읽기, 과학 소양 성취도와 변화 추이를 국제 비교 관점에서 평가한다. PISA 결과는 각국의 교육정책 수립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PISA 2025’에선 세계적으로 수학 실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496점이던 세계 수학 과목 평균 점수는 2025년 469점으로 추락했다.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학생의 수학 과목 평균 점수는 522점으로 2022년보다 5점 하락했다. 전체 91개국 가운데 홍콩과 함께 공동 6위를 기록했다. 전체 등수로는 여전히 세계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심각한 ‘경고음’이 울린 형국이다.

당장 중국(612점) 싱가포르(563점) 마카오(549점) 대만(546점) 일본(525점) 등 주요 동아시아 국가에 모두 뒤처졌다. 3년 전보다 경쟁국과의 점수 차는 벌어졌다.

PISA 최상위권을 동아시아 국가가 싹쓸이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고등학생의 수학 실력은 동아시아에서 최하위다. 그동안 동아시아 국가는 높은 교육열과 강도 높은 학습 환경, 수학·과학 교육에 대한 집중적 투자로 PISA 출범 이후 줄곧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학 분야에서도 남·북아메리카와 유럽, 기타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비해 압도적인 점수 차를 보여왔다.

장기 흐름을 보면 고득점 집단인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른 이질성이 한국에 뚜렷해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20년간의 성적 추이 분석 자료를 내놓은 ‘PISA 2022’에서 한국은 아시아 6개국 중 수학에서 하위권 비율이 증가하고 상위권 비율이 감소한 유일한 국가로 지목된 바 있다. 최근 10년간 성적 추이 분석을 첨부한 ‘PISA 2025’에서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대만, 싱가포르 등과 대조적으로 한국 수학은 뒷걸음질을 계속했다. 이 같은 하락 추세를 보면 자칫 수학 우등국 그룹에서 탈락하는 ‘수학 탈(脫)아시아’마저 진행될 태세다.
상위권 ‘고등 수학’도 위기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PISA 점수뿐 아니라 일선 교육 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현장에선 2006~2008년께 등장한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용어가 일반화한 지 오래다. 수학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시험 시간에 답을 찍은 뒤 잠자는 학생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상위권이라고 해서 수학 교육의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2026학년도 서울대 자연 계열 신입생의 22.4%가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기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보충수업 격인 ‘기초수학’ 과정에 배정됐다.

서울대 공대는 신입생 수학 기초역량 평가 결과에 따라 보충수업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교육과정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수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일부 기초과목 수강을 면제받고, 역량이 부족한 학생은 미적분 등 필수 분야에서 보충 교육을 받는 방식이다.

국내 최상위권이라는 서울대 공대에서도 수학 실력이 부족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학 전체 평균뿐 아니라 상위권 수학까지 붕괴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출제 범위 축소를 꼽는다. 수능 수학 출제 범위는 교육과정 개편 때마다 축소됐다.

‘어렵다’고 평가되는 분야는 시험 대상에서 잇달아 빠졌다. 2021학년도부터 수학 가·나형 구분이 사라지며 ‘기하와 벡터’가 빠졌다. 2022학년도부터는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한 과목만 선택하도록 바뀌었다. 2028학년도부터는 문·이과 구분 없이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만 출제한다. 심화 과목은 출제 대상에서 모두 제외한 것이다.

대학이 원하는 분야와 수준에 맞춰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우회로도 없다. 출제 대상으로 정한 고교 과정 범위를 벗어나는 수학 문제를 논술 또는 면접 등에서 내는 것도 금지돼 있다. 수학 분야에서 수준 높은 입학생을 뽑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원천 차단돼 있는 셈이다. 공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조차 공대 수업에 필수적인 수학을 배울 필요가 없어지면서 공대 교육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능 출제 범위 축소는 중하위권의 수포자 발생을 막지도 못하고 최상위권의 기초 실력만 근원적으로 갉아먹는 양상이다.
“어려우면 안 배운다”는 왜곡된 철학

이처럼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이 나빠지는 흐름은 뚜렷하지만, 교육당국의 대처는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교육당국은 학생의 수학 실력을 키우는 ‘정공법’ 대신 지속해서 수학 교육과정의 난도를 하향 조정하는 대책만 선보이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어려운 수학’은 무리해서 가르치지 말고 피해 가는 대상이 됐다. 수능에서도 고난도 심화 수학은 아예 출제 대상에서 빠졌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킬러 문항’은 수능 실패의 원흉으로 비난받았다.

이처럼 수학을 덜 가르치고, 쉬운 것만 가르치려는 움직임의 뿌리는 깊다. 1995년 한국은 5·31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학교의 자율화, 학생 중심 교육, 선택형 교육과정, 대학입시 다양화, 자유학기제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학생의 기초 학력을 보장하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어려운 과목’이라는 선입견이 강한 수학 교육 분야에선 회피 성향이 유독 강했다. ‘어려운 수학 교육은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큰 힘을 발휘했다. 이런 움직임은 진보 교육계가 주도했다. 2010년 이후 서울시 교육감은 19대 문용린 교육감(2012~2014년) 시절을 제외하면 곽노현, 조희연, 정근식 교육감 등 ‘진보 교육감’이 줄곧 초·중·고교 교육 실권을 쥐었다.

좌파 교육감은 경쟁적이고 서열화된 평가 중심의 교육 체제를 지양하는 데 정책의 중점을 뒀다. 주입식·암기식 교육 대신 실생활과 연계된 체험, 토론, 탐구 중심의 수학 수업을 지향한다는 명분으로 ‘쉬운 수학’을 강조했다.

체험 위주 수업은 연산 학습이 주를 이루는 초등 저학년 교육과정까지는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소수, 정수, 유리수, 방정식, 함수, 집합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중등 교육과정부터는 적용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 여기에 중학교 1학년까지 시험이 없어졌고 전국 단위 학력 측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기초 수학 실력을 평가할 기회가 사라졌다. 공교육이 붕괴한 자리는 사교육이 메웠다. 수학 원리를 이해하기보다 선행학습에 의한 ‘점수 따기’ 교육만 활성화됐다.

‘쉬운 수학 교육’에 관한 진보 교육감의 철학을 잘 살필 수 있는 게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2018년 발표한 ‘수학교육, 혁명적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곽 전 교육감은 “초·중등 교과 중 수학은 다른 과목과 달리 실용성이 없는 과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평생 써먹는 국어와 문학, 평생 활용하는 외국어와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급수학을 접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수학 교육을 쓸데없는 것으로 봤다. 평생 간단한 암산이 가능한 정도의 산수 실력이면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떤 지장도 없다고도 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모두가 심화 단계 수학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월성 교육의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그리고 이런 ‘철학’에 기반한 수학 교육이 10년이 훌쩍 넘게 이뤄졌다.
‘교육 백년대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풀뿌리 교육에서 수학 교육이 고사(枯死)하는 현상 못지않게 국가 전체 차원의 교육정책도 일관성이 없었다. 20년 넘게 중앙정부가 보수와 진보 정권을 오가면서 교육정책도 요동쳤다. 사교육이나 자율형사립고 같은 교육의 ‘외형’을 둘러싼 문제와 대학 입시 결과만 정치 이슈화됐다. 교육 시스템 전반의 기초학력이 부실해지는 부분에 교육당국은 애써 눈을 감았다. 교육정책의 일관성도 부족했다. ‘백년대계’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AI 혁명이 가파르게 진행되는 지금 수학 교육의 중요성은 날이 다르게 커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도 국가 경쟁력의 기초를 수학 교육 강화에서 찾는다. 수학 교육이 어렵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수학은 점점 더 미래 세대의 시급한 생존 문제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공계 대학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고등수학의 관문을 넘어야만 한다. 수학 교육의 혁신을 더는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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