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관심사는 오로지 대북 확성기 중단이었다.”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이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이후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그해 8월 북한군은 비무장지대(DMZ)에 목함지뢰를 몰래 묻어 우리 장병 2명의 다리를 앗아갔다. 우리 군은 11년간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자 북한은 확성기를 향해 곡사포 등을 쏘며 재도발했다.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휴전 이후 북한 무력 도발에 맞선 우리 군의 상응 조치는 다양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 사격했고, 천안함 피격 때는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을 비롯한 한·미 연합 전략자산을 전개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비물리적 수단인 대북 확성기만큼 북한의 즉각적이고 격렬한 반응을 이끌어낸 카드는 없었다.
그제 국방부는 지난 21일 발생한 DMZ 지뢰 폭발 사고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고 지역에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고, 작년부터 포착된 지형 변화 등을 종합할 때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방부는 북한의 의도적 소행으로 최종 판정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꺼내 들 상응 조치가 마땅치 않다는 게 딜레마다. 전면전 위험을 무릅쓴 물리적 타격이나 전략자산 전개는 군사·정치적 부담이 크다. 북한에 확실한 압박과 타격을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거론되는 이유다. 가로 13m, 세로 8m의 고정식 확성기 24기와 이동식 확성기 16기는 가동이 상시 준비돼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작년 6월 ‘접경지역 평화와 안전 확보’라는 대선 공약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했다. 하루 만에 모든 확성기를 철수한 만큼 다시 제자리에 세우는 데도 하루면 충분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야간이면 아무런 방해 없이 24㎞ 떨어진 개성 초입까지 뚫고 들어간다. 주민의 눈과 귀를 막고 70년간 3대 독재 세습을 이룬 김씨 일가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다. 우리가 이렇게 효과적이고 비대칭적인 전력을 손에서 놓을 이유가 없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