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글로벌 시장 진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경영 방정식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기존 의약품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동시에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감수하며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중국 바이오 기업의 부상과 미국의 약가 정책 변화 등 대외 변수까지 겹치면서 경영진의 판단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이다.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약바이오 업계의 오너 2~4세도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미 그룹 회장이나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을 이끄는 인물부터 실무 경험을 쌓으며 승계를 준비하는 후계자까지 단계도 다양하다.
일동제약과 동아쏘시오그룹은 오너 3세가 경영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두 그룹 모두 4세의 경영 참여가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반면 JW그룹에서는 창업주 4세대가 주요 사업회사의 전략 업무를 맡기 시작했다.
일동제약은 윤웅섭 회장이 경영을 이끌고 있다. 1967년생인 윤 회장은 현재 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고 있는 윤원영 일동홀딩스 회장의 장남이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일동제약에 입사해 전략기획과 기획조정실 등을 거쳤고 2014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26년 1월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오너 3세 경영의 책임도 한층 커졌다.
윤 회장은 회장직에 오르면서 이재준 사장을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일동홀딩스 분할 이후 오너 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던 일동제약이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에 선임한 것은 약 10년 만이다. 회계사 출신 오너(윤웅섭 회장)가 안에서 돈줄을 조이며 수익성을 개선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생체의공학 박사 출신 전문경영인(이재준 사장)이 밖에서 비만약 등 신약 기술을 파는 철저한 실리 위주의 ‘역할 및 책임 분담 체제’로 간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동아쏘시오그룹 강정석 회장은 1964년생으로 고(故) 강신호 동아제약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이다.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성균관대에서 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지주회사 체제 출범과 함께 동아쏘시오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같은 해 부친의 보유 지분을 넘겨받으며 3세 승계를 마무리했다. 당시 배다른 형제인 차남 강문석 전 동아제약 사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거쳐 후계 구도를 정리했다.
다음 세대의 등장은 아직 먼 이야기다. 강 회장의 자녀는 경영 일선에 나서기에는 어린 나이로 알려졌다. 다만 과거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불거졌던 만큼 향후 4세 승계는 과거의 분쟁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할지가 업계의 장기적인 관전 포인트다.
반면 JW그룹은 장남 후계 원칙을 고수한다. 이경하 JW홀딩스 회장 겸 JW중외제약 회장은 강 회장보다 한 살 위인 1963년생이다. 고 이종호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드레이크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입사해 실무를 거친 뒤 2001년 JW중외제약 대표이사 사장, 2007년 JW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고 2015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현재 핵심 사업회사인 JW중외제약의 대표직은 전문경영인(신영섭·함은경)에게 넘겨주었으나 지주사인 JW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그룹 전반의 투자와 차세대 신약 R&D의 큰 틀을 지휘하고 있다.
이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4세인 이기환 디렉터는 2022년 지주사인 JW홀딩스 경영기획 매니저로 입사해 자금과 기획 업무를 익혔다. 이후 입사 4년 만인 2026년 1월 부장급 임원 직급인 디렉터로 승진하며 JW중외제약의 개발부문 포트폴리오전략부장으로 이동했다. 아버지 이 회장이 현장에서 첫 임원이 되기까지 걸렸던 시간(9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인 셈이다.
지분 승계 역시 잡음 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 디렉터 위로 쌍둥이 누나들이 있으나 이들의 지주사 지분율은 각각 0.16% 수준으로 경영권과 무관하게 철저히 배제돼 있다. 이 디렉터는 입사 이후 꾸준한 장내 매수를 통해 지주사 JW홀딩스의 지분율을 2026년 8월 5일 기준 4.68%까지 끌어올리며 이 회장(28.43%)에 이어 가문 내 개인 2대 주주로 자리를 굳혔다.
이 회장이 영업과 경영 실무를 거쳐 그룹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면 이 디렉터는 지주사 관리 업무를 익힌 뒤 신약과 제품의 개발 전략을 다루는 자리로 이동했다. 개발 전략을 통해 사업적 판단력을 쌓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과정이 앞으로의 숙제가 될 전망이다.
경영 무대에 선 8090 후계자
제약바이오 업계의 8090세대 오너 3·4세들은 경영 참여 방식과 속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신사업 투자로 일찌감치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 있는 반면 실무 조직에서 경험을 쌓으며 경영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대웅제약 윤석민 웰다 팀장과 종근당 이주원 상무는 실무 조직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오너 3세다. 1993년생인 윤 팀장은 대웅그룹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계사인 엠서클에서 연속혈당측정(CGM) 기반의 플랫폼 웰다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된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에서 직접 성과를 증명해 승계 명분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987년생인 종근당 이주원 상무는 2020년 입사 후 개발기획 업무를 거쳐 2026년 상무로 승진했다. 그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종근당의 신약 파이프라인과 글로벌 임상 전략을 수립하는 중책을 맡았다. 장남인 이 상무는 최근 이장한 종근당 회장으로부터 종근당 주식을 세 자녀 중 가장 많이 증여받으며 3세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증여 후 이 상무의 지분율은 2026년 10월 8일 기준 5.32%로 뛰어올라 지주사인 종근당홀딩스(26.70%) 다음 2대주주 자리를 확보했다.
다만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종근당홀딩스 지분 승계는 과제다. 현재 이 상무가 직접 보유한 종근당홀딩스 지분은 2.89% 수준에 불과하다. 이 회장이 종근당홀딩스 지분 33.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 상무가 아버지로부터 지주사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 이전받고 막대한 증여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향후 후계 구도 안착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미 대표와 부사장 직함을 달고 경영 전면에 나선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정균 보령 대표다. 1985년생인 김 대표는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장남이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에서 사회행정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회계법인 삼정KPMG에서 경력을 쌓은 뒤 보령 경영에 참여했다.
김 대표는 전통 제약사의 사업 영역을 우주 헬스케어로 확장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2022년 대표이사 취임 후 사명을 ‘보령제약’에서 ‘보령’으로 바꾸고 우주 사업 투자를 이어왔다. 같은 해 민간 우주정거장 개발을 추진하는 미국 액시엄스페이스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다만 우주 헬스케어가 보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액시엄스페이스가 최근 급성 경영난을 벗어났지만 추가 자금조달과 사업 실행 능력이 여전히 핵심 변수다.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동시에 투자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숙제가 김 대표 앞에 놓여 있다.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부사장)은 주요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대기업 오너가 출신 여성 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1989년생인 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다. 2017년 SK바이오팜에 입사해 사업개발 업무를 맡았다. 2023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최연소 임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25년 말 조직 개편에서는 기존 사업개발본부장에서 전략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략본부는 전사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글로벌 성장 전략 추진, 신사업 검토 등을 담당한다. 신약 사업개발을 넘어 회사 전반의 성장 전략을 다루는 역할로 업무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최 부사장은 SK(주)에선 상근 미등기임원인 성장지원 담당을 맡고 있다. SK바이오팜의 사업 실무와 지주사의 그룹 차원 성장 전략 업무를 함께 수행하며 경영 참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셀트리온은 속도…한미는 안갯속
1984년생인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와 백인환 대원제약 대표, 윤인호 동화약품 대표는 일찌감치 경영 일선에 진입한 젊은 오너 경영인이다.
2024년 대표이사에 오르며 대원제약의 3세 경영 시대를 연 백 대표는 사촌 동생인 백인영 상무와 역할을 분담하는 ‘사촌 분업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백 대표가 신약 개발과 전문의약품을 맡고 동생이 소비재 사업을 이끄는 구조다. 백 대표는 백승호 대원제약 회장의 장남으로 미국 브랜다이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윤 대표는 국내 최장수 제약사 동화약품 윤도준 회장 장남이다. 그는 2025년 작은아버지 윤길준 전 부회장의 퇴임과 누나 윤현경 전 상무의 고문 전환을 계기로 오너 4세 중심 경영 체제를 공고히 했다. 현재 윤 대표는 40년 가까이 회사에 몸담은 베테랑 전문경영인 유준하 대표와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유 대표가 의약품 영업과 생산 등 전통 사업 조직을 든든히 받치는 사이 윤 대표는 해외 사업과 R&D 부문에 외부 전문가를 공격적으로 수혈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전통 제품(활명수·판콜·후시딘)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여전히 30%를 웃돌고 있다는 점은 숙제다.
국내 바이오 시가총액 1위인 셀트리온의 후계 구도는 창업주의 강력한 지원 아래 속도를 내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의 장남인 서 대표는 오너 2세로 2024년 3월 셀트리온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2026년 1월 세계 최대 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 메인 트랙에 단독으로 나서며 그룹의 차세대 경영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 회장이 글로벌 생산 기지 확보 등 굵직한 거시적 투자를 진두지휘하는 동안 서 대표는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총괄에 이어 2026년 셀트리온홀딩스 대표까지 맡으며 경영 범위를 넓혔다. 다만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에 대한 서 대표의 지분이 0%인 만큼 향후 승계 과정에서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반면 국내 R&D 명가로 꼽히는 한미약품그룹의 승계 구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고 임성기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은 1972년생으로 상속세 문제에서 비롯된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거치며 한미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 모녀가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연합을 구축하면서 임 회장 형제가 지분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연합 체제에 금이 간 상태다. 송 회장과 신 회장은 투자 등에 대한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현재 임 회장은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과 DXVX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겨냥한 독자적인 바이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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