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호텔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급증과 호캉스 문화의 정착, 글로벌 기업인들의 방한 수요가 맞물리면서다. 한때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아 존폐 위기에 몰렸던 호텔업계가 국내외 수요를 등에 업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 호텔 시장의 잠재력도 재평가되고 있다. 해외 호텔 브랜드들의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주목하면서 잇따라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부동산 개발부터 유통·금융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호텔 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호텔 산업에 자본이 몰리면서 시장의 경쟁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다. 단순히 객실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과거와 달리 미식과 문화, 웰니스 등 차별화된 경험을 앞세워 고객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한국 호텔이 생존의 시대를 지나 성장의 시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텅 빈 로비와 불 꺼진 객실,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결혼식 등 연회 예약까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호텔업계는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히고 관광객이 사라지면서다. 객실을 채우기 위해 가격을 낮췄으며 일부 호텔은 영업을 중단했다. 폐업을 결정하고 아예 건물을 다른 용도로 바꾼 호텔들도 속출했다.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호텔은 끝 모를 암흑기를 맞으며 대표적인 위기 산업으로 전락했다.
지금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들고 국내에서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호캉스’가 일상적인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기업인들의 방한과 기업 행사까지 늘면서 호텔을 찾는 고객층도 넓어졌다.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던 호텔업계가 ‘부활’을 넘어 새로운 황금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텔업계가 호황이라는 사실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호텔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ADR(Average Daily Rate·평균 일일 객실 요금)과 RevPAR(판매 가능한 객실당 매출)은 최근 1년 사이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지난해 6월 6만원대였던 ADR은 1년 동안 크게 올라 14만원을 돌파했으며 4만원대였던 RevPAR은 9만원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수익성 지표가 크게 개선되면서 호텔신라, 롯데호텔 등 국내 주요 호텔 기업들은 올 상반기 호실적을 기록하며 재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호텔 현장에서는 밀려드는 고객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한 5성급 호텔 관계자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객실 예약률이 80%를 웃돌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일등공신은 단연 외국인이다. 이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국내 호텔 시장의 볼륨을 폭발적으로 키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6년 한 해 동안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사상 처음으로 2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K컬처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로 호텔들은 연일 북적인다.
특히 서울 주요 상권에서 입지와 브랜드 경쟁력을 갖춘 호텔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여행 방식과 목적이 크게 달라지면서다. 과거에는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단체관광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K팝 공연과 드라마 촬영지, 뷰티 매장, 유명 식당 등을 직접 찾아다니는 개별 자유여행객이 늘면서 인근 호텔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대형 성형외과 및 종합병원 근처에 있는 4~5성급 호텔들도 방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성형과 건강검진 등 의료를 목적으로 방한하는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겨냥해 병원과 연계한 장기 투숙 패키지를 제공하며 쏠쏠한 수익을 올리는 호텔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내국인 수요는 더욱 탄탄해졌다. 팬데믹 시기 해외여행의 대체재로 급부상했던 호캉스는 이제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여가 문화로 정착했다. 호텔은 더 이상 특별한 기념일을 맞았을 때만 찾는 공간이 아니다. 주말에 도심에서 휴식을 취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며, 수영장과 스파에서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호텔업계의 사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객실 매출에 집중해왔던 주요 호텔들은 식음료와 연회, 레저, 웰니스 등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객실을 이용하지 않는 고객도 호텔 레스토랑이나 베이커리, 바 등을 찾도록 유도하면서 호텔의 공간 전체를 수익 창출의 무대로 활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비즈니스 수요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운데 주말과 관광 비수기에는 국내 고객이 로비와 객실을 가득 채우는 이상적인 선순환 구조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만 하더라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대규모 수행인력을 동반해 수차례 한국을 찾았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수도 서울에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여는 세계적인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향후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이들도 크게 늘어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호텔 입장에선 대형 호재다. 낮에는 관광과 쇼핑을 즐기고 밤에만 호텔에 머무는 관광객과 달리 비즈니스 고객은 회의와 행사 일정에 맞춰 숙박하고 연회장과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호텔 입장에서 수익성이 높은 고객군으로 꼽힌다.
비즈니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호텔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형 연회장과 첨단 회의시설을 갖추는 것은 물론 해외 고객을 위한 다국어 서비스와 맞춤형 의전, 식음료 서비스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호텔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복합 서비스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시장에서는 한국 호텔의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팬데믹 당시에는 호텔을 매입한 뒤 오피스나 주거시설 등으로 용도를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호텔을 숙박시설로 유지해 운영 수익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서울 호텔 거래 규모는 약 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거래된 호텔 자산은 모두 호텔 용도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의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호텔 브랜드의 국내 진출 움직임이 현재 예사롭지 않다. 아만, 로즈우드 등 해외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었던 럭셔리 호텔 브랜드들이 한국 상륙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국의 호텔 시장이 관광객과 내국인, 비즈니스 고객 등 ‘3박자’를 갖춘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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