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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번역한 윤정환 서울대병원 수련의

입력 2026-10-16 15:07  


고등학교 시절, 생명윤리와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한 학생이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었다. 궁금한 문제를 깊이 다룬 우리말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영어 원서를 직접 번역해 읽으며 토론했고, 언젠가 이 책을 우리말로 옮겨 출간하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윤정환 서울대학교병원 수련의가 팀 르윈스의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서연비람)를 번역·출간하게 된 배경이다.

윤 수련의는 용인외대부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수석 입학했다. 의대 재학 시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한 최상재 PD와 '논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를 공동 집필하는 등 생명윤리와 논리학 분야에서 꾸준한 탐구를 이어왔다. 수련의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도서 번역의 계기와 책이 던지는 질문, 의사에게 생명윤리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를 번역해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생명윤리와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친구들과 과학철학 동아리 ‘The POS’를 만들어 활동했고, 당시 궁금했던 문제를 깊이 다룬 우리말 자료가 부족해 영어책을 직접 번역해 읽고 토론했다. 2015년에는 이 활동이 조선일보에 이색 동아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도 그때 읽은 책이다. 이후 의학을 공부하면서 생명윤리의 쟁점을 이해하려면 윤리 이론뿐 아니라 그 논의가 전제하는 의학적·생물학적 개념까지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고등학생 때 번역을 생각했던 책을 의사가 돼 출간하게 됐다.”

- 여러 생명윤리 책 가운데 팀 르윈스의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윤리적 판단의 출발점부터 점검한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는 어떤 기술이 옳은지 그른지부터 묻지만, 그때 사용하는 ‘자연적이다’, ‘질병이다’, ‘치료다’라는 말의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르윈스는 이런 개념을 어떤 생물학적 이해에 근거해 사용하는지 묻는다. 윤리 원칙을 적용하기 전에 그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 책에서 말하는 생물학과 윤리의 관계는 무엇인가.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무엇이 옳은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능력이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과 그 차이를 사회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문제다. 반대로 실제 생명 현상을 잘못 이해한다면 윤리적 판단 역시 출발부터 흔들릴 수 있다. 과학은 판단에 필요한 사실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 책에서 다루는 ‘치료와 향상’의 경계도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인가.
“그렇다. 기억력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개입과,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기억력을 높이는 개입을 생각해 볼 때, 흔히 앞은 치료, 뒤는 향상이라고 부르지만 어디까지를 정상적인 기능으로 볼 것인지 따져보면 구분이 간단하지 않다. ‘치료니까 허용하고 향상이니까 금지한다’고 판단하기보다 기대되는 이익과 위험, 당사자의 선택과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한다.”

- 의사에게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생명윤리 공부까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기본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가능한 선택이 여러 개라면 효과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환자가 어떤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느 정도의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하고, 의사에게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전문성과 함께 그 선택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할지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윤리는 의학과 분리된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 우리나라 의학교육에서 의료윤리와 생명윤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나.
“윤리 원칙이나 규정을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여러 원칙이 충돌하는 실제 상황에서 판단 기준을 조율하는 토론 중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임상실습과 수련 과정으로 이어지는 연속성도 필요하다.”

- 의대 입시에서도 윤리 평가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했는데, 자칫 모범답안을 외운 학생을 선발하는 평가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그 위험까지 고려해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서울대 의대 입시에서 MMI, 즉 다중미니면접을 경험했다. 윤리 지식이나 정해진 답을 얼마나 외웠는지를 평가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떤 이해관계와 가치가 충돌하는지 파악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판단 근거를 설명하는 능력을 봐야 한다. 평가의 공정성과 사교육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고, 입학 후 교육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 '논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공동 집필과 이번 번역 작업은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두 작업을 관통하는 관심이 있다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두 책이 다루는 내용은 다르지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판단의 근거를 살펴야 한다는 관심은 이어져 있다. 논리를 공부한다고 모든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로서도 의학적 근거를 충실히 공부하면서 환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함께 살피고, 선택의 이유와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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