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5차 발사는 민간 주도로 이뤄진 첫 발사다. 민간 기업의 역할이 발사·운용까지 확대됐다. SK하이닉스, HD현대중공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국내 기업 약 300곳이 참여했다. 한국 우주 산업이 정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에서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부품을 만들며 참여한 국내 스타트업의 ‘숨은 공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누리호 5차 발사에 참여한 ‘스타트업 군단’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우주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력이 오래된 나라스페이스는 초소형 인공위성의 설계·제작부터 운용, 위성 영상 데이터 분석까지 수행하는 종합 우주기술 기업이다. 누리호 5차 발사 때 국산 소자·부품 우주검증 위성 ‘E3T 2호기’ 본체의 제작 및 운용을 맡았다. 박재필 대표는 “E3T 2호기는 성공적 발사 후 안정적으로 임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의 스페이지 헤리티지(우주 검증 이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확보할 위성 데이터는 위성 데이터 환경 변화 감지, 재난 대응, 국방·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계획이다.
E3T 2호기에는 코스모비의 전기추력기용 1A급 할로우음극, 인세라솔루션의 고속정밀조향거울(FSM) 등 국내 스타트업의 핵심 부품이 들어갔다. 코스모비는 KAIST 전기추진연구실에서 출발한 우주 전기추진 시스템 전문 기업이다. 2023년에 창업해 초소형 위성이 우주에서 궤도를 변경하거나 고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홀추력기와 관련 핵심 부품을 개발하고 있다.이번에 투입된 전기추력기용 1A급 할로우음극은 우주 부품 국산화의 주요 핵심 품목이다. 약 1A(암페어) 수준의 방전 전류로 전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소형·고효율 전자 공급원이다.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전기추진 장치에서 초기 플라스마를 발생시키고 방출되는 이온빔을 전기적으로 중화하는 역할을 했다. 박동하 코스모비 대표는 “우주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부품인지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며 “이번 경험을 계기로 국내외 군집위성 시장 진출 등 후속 사업을 제대로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3T 2호기에 FSM을 장착한 인세라솔루션은 우주 광통신과 정밀 광학 시스템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을 개발하는 광기전 기술 전문 기업이다. FSM은 레이저 빔의 방향을 빠르고 정밀하게 조절하는 장치다. 위성 간 또는 위성과 지상 간 광통신에 주로 활용한다.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은 우주·방위산업 분야의 핵심 광학 부품을 국산화했다는 평가다.
스텝랩은 대전샛-1호의 발사·분리에 사용되는 자체 개발 진동저감형 16U 큐브위성 사출관 ‘STEP-POD16’을 누리호 5차 발사에 적용해 우주 비행 실증을 추진했다. 오현웅 대표는 “대전샛-1호의 양방향 교신까지 성공하면서 위성 시스템과 사출관의 기술력을 우주 환경에서 확인했다”며 “우주 핵심소재·부품·장비의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며 초소형 위성 시스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힐 것”이라고 했다.
인터그래비티는 우주 환경에서 궤도수송선(OTV) 등에 활용되는 친환경 추진 시스템 ‘친환경 추진 모듈’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12년간 발사체 및 엔진 전문가로 근무한 이기주 대표와 항우연 출신 연구원이 주축이 돼 2024년 창업했다. 인터그래비티는 친환경 추진 모듈뿐 아니라 항법 모듈을 누리호 5차 발사 때 투입해 기술을 검증했다. 항법 모듈은 궤도상에서 자율 운용 및 정확한 위치·자세 제어를 위한 핵심 장비다. 이 대표는 “누리호 5차 발사에서 기술 검증이 된 만큼 내년 1분기 스페이스X 발사 때 본격적인 상용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1년 창업한 스페이스린텍은 누리호 5차 발사에 우주 의약 실험 위성 ‘BEE-1012(비천십이)’를 개발해 탑재했다. 해당 위성은 미세중력 환경에서 단백질 결정 성장 과정을 관찰하고, 신경망처리장치(NPU) 기반 온보드 AI를 활용해 결정 형성 및 성장 단계를 우주에서 분석하도록 설계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우주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신약 연구와 제조 기술을 개발하는 우주의약 전문 스타트업이다. 지상과 다른 우주 환경에서 단백질 결정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연구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누리호 4차 발사에 이어 연속으로 우주 실증을 추진하며 우주의약 연구개발 경험을 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국내 스타트업이 우주용 부품 분야에서 거둔 성공 경험은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요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지난 7일 누리호 5차 발사 직후 “2032년까지 매년 1회 이상 민간 주도 발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6차 발사를 준비한다. 국내 우주 부품 스타트업의 존재감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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