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자기 소유의 ‘친일파’ 유묵을 박물관 특별전에 애국지사 유묵으로 전시한 것과 관련해 “저의 중대한 불찰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사과했다.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3일 확정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최초 출품작 목록에는 문제가 된 유묵 ‘일반시국은’이 없었다. 이 작품이 전시 대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은 5월 8일 유 관장이 직접 추천하면서부터다. 박물관은 유 관장의 추천 2주 만에 관장 보고를 거쳐 전시 위치까지 최종 확정했다.이 과정에서 작품의 진위를 확인할 검증 절차는 작동하지 않았다. 박물관은 다른 작품과의 비교·검증 없이 소장자인 유 관장의 전언 등을 근거로 해당 작품을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판단했다. 결국 친일파 박중양의 작품이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전시됐다. 유 관장은 ‘감정을 받은 적 있느냐’는 국정감사 질의에 “나 자신이 서예사 전공자라서 확신했다”고 답했다.
박물관에서 관장 개인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데 따르는 이해상충 여부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품을 추천한 유 관장은 최종 의사결정에도 관여했다. 그는 논란이 불거진 후 네 차례 사과 입장을 밝히면서도 해당 작품이 자신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국정감사에서 “처음에 내 소장품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내 개인 자랑이 될까 봐였다”며 “박중양의 작품으로 밝혀진 뒤에는 미술사가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일반시국은’ 유묵은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라는 뜻의 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7월 열린 ‘우리들의 밥상’에서 ‘한인(韓人) 박원근’이라고 적힌 서명을 바탕으로 애국지사 박원근(1912~1950)의 글씨로 소개했다. 그러나 박원근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박중양의 글씨로 확인됐다. 유 관장은 2019년 온라인 경매를 통해 해당 유물을 5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국정감사에선 국립중앙박물관이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특별전에 출품한 ‘시왕도’가 일본에서 제작된 상업적 위작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 관장은 “위작이 절대 아니다”라며 “개인 견해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뿐 아니라 미국 하버드대, 클리블랜드 미술관, 일본에 분산된 작품을 모아 전시한 것으로 학계에서도 진품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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