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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더니 이젠 악당 취급"…10년 새 더 독해진 '복수극'

입력 2026-10-19 18:15   수정 2026-10-20 01:12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스크린 속 악당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빅테크 창업자들이 악역을 맡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제작되고 있다. 테크 기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과 반감이 콘텐츠에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크린 속 ‘빅테크 저격’
19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올가을부터 연말까지 공개되는 영상 콘텐츠 중 최소 6편이 실리콘밸리 거물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소셜 레코닝’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페이스북 유해성을 감추려는 음흉한 인물로 묘사된다. 오는 12월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저격하는 영화 ‘아티피셜’이 공개된다.

인물의 실제 행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달 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머스크’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가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치권과 결탁하는 과정을 고발했다. 16일 공개된 다큐멘터리 ‘유 캔 시 에브리싱’은 혈액검사 사기로 수감을 앞둔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창업자의 일상을 밀착 촬영해 화제를 모았다.


여기서 그려진 빅테크 CEO의 모습은 비슷하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명분으로 타인의 피해는 외면하고 자신의 권력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머스크’의 앨릭스 기브니 감독은 머스크 CEO의 핵심적 결함을 ‘맹목적인 자기 확신’으로 정의했다. “자신의 대의가 너무나 숭고하기에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빅테크에 반감을 느끼는 미국 사회 여론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 대중은 테크 거물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다. 3월 매사추세츠대 연구진 조사에 따르면 저커버그 CEO 비호감도는 53%로 호감도(10%)보다 훨씬 높았으며 머스크 CEO도 비호감도(46%)가 호감도(10%)를 크게 웃돌았다.
◇너드에서 악당으로
한때 테크 기업 CEO들은 ‘좋은 억만장자’로 여겨졌다. 어딘가 엉뚱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너드(nerd)’의 전형적인 예로 그려졌다. 페이스북 창업기를 다룬 2010년 영화 ‘소셜네트워크’에 등장하는 저커버그 CEO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모습이 악당으로 바뀐 건 2010년대 중반부터다. 2015년 개봉한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메인 빌런은 배우 새뮤얼 잭슨이 연기한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 창업자였다. “인류가 너무 많아 지구가 망한다”며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백만 명을 죽이려 하는 인물이다. 같은 해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엑스 마키나’에서도 실리콘밸리 천재가 악당으로 나왔다.

영화에서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다가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10년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의 이런 주제의식은 더 현실적으로 변했다. 이제 테크 창업자를 다룬 영상물에선 인공지능(AI)과 사생활 침해, 기술 기업 권력 확대 등 현실에 가까운 문제가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이런 흐름을 두고 테크업계를 향한 ‘할리우드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10년간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등 스트리밍 사업을 앞세운 빅테크 영향력이 확대되며 영화산업 콘텐츠 주도권이 테크 기업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확대는 케이블 수신료와 DVD 판매에 기대던 할리우드의 기존 수익 구조를 뒤흔들었다. 월트디즈니 등 한때 제왕처럼 군림하던 엔터테인먼트 대기업의 가치는 신생 빅테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NYT는 “요즘 미국인 상당수는 할리우드의 시각에 동의한다”며 “실리콘밸리가 이제는 사회에 기여하는 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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