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개정 논의는 작년 9월 공식화했다. 정부·여당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상법에 규정하며 경제계에 대한 ‘당근책’으로 꺼내 들었다. 손해 발생 가능성만 있어도 죄가 되는 등 적용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당정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판례 3300여 건을 유형화하는 난도가 너무 높은 데다 6·3 지방선거, 8·17 전당대회, 국정감사 등 굵직한 일정이 이어지며 도입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졌다.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올해 4월 배임죄를 대체할 특례법 초안을 마련해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례법 가칭은 ‘재산관리범죄에 관한 처벌법’이다. 핵심은 법 적용 대상을 ‘법률·규정에 따라 재산관리 임무를 부여받은 자’로 좁히고 처벌되는 행위도 열거형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현행 배임죄와 달리 손해를 일으켰는지 따진다는 점도 차이다. 합리적 경영 판단은 면책하는 ‘경영 판단 원칙’도 포함된다.
민주당 내에선 신중론이 적지 않다. 여당 관계자는 “판례가 워낙 많아 법조문을 구체화하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범죄 유형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며 “법무부 보고를 받은 당의 관련 태스크포스(TF)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완성도를 더 높여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배임죄 폐지에 적극적이던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인사 논란 끝에 법무부 장관에서 낙마해 동력이 더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부 수장이 공백인 가운데 법안 작업이 눈에 띄게 느려진 데다 현행 배임죄를 유지하면서 일부 조문만 고쳐야 한다는 신중론도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배임죄 폐지가 여당이 추진 중인 공소취소특검법과 함께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서울권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새로 생기는 특례법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백현동 개발 배임 의혹 등이 죄가 되지 않으면 면소(형벌권 소멸) 판결이 날 수 있다”며 “형을 사는 이들까지 풀려날 가능성과 맞물려 정치권 논란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앞서 배임죄 대체 입법을 ‘이재명 구하기법’으로 표현했다. 여당 일각에서 지지율 회복 전까지는 공소취소특검법과 배임죄를 모두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도 읽힌다.
경제계에선 정치적 이유로 배임죄 합리화가 무력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배임죄 폐지에 속도도 내지 못하면서 민사책임을 강화하겠다며 디스커버리제도(증거개시), 집단소송제 도입을 언급하고 있다”며 “경영 환경이 더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시은/한재영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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