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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행정·논문서 해방"…美과학 이끄는 민간연구소

입력 2026-10-20 18:16   수정 2026-10-21 01:58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미국의 과학 연구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학과별 치열한 연구비 확보 경쟁과 복잡한 행정 절차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등 민간 투자자가 잇달아 독립 연구소를 세우면서 ‘민간 과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최근 5년간 새로운 형태의 민간 과학 연구기관이 잇달아 설립됐다. 올트먼 CEO는 지난해 연구자 루이 안드레와 함께 민간 연구기업 에피스테메를 세웠다. 고대 그리스어로 ‘참된 지식’을 뜻한다. 구체적 연구 목표와 논문 발표 의무 없이 연구자에게 폭넓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가 실패하더라도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이런 연구 환경에 이끌려 물리학 석학 찰스 마커스는 미국 워싱턴대 종신교수직을 포기하고 이 회사에 합류했다.


2021년 설립된 비영리 연구 지원 기관 컨버전트리서치도 특정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 연구기관에 2000만~5000만달러를 지원하고 3~7년의 연구 기간을 보장한다. 초음파로 뇌 활동을 읽어내는 인터페이스 등 대학의 개별 연구실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장기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부는 대학과 국립연구소의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 패권을 구축했다. 하지만 소수 심사위원회가 연구비를 배분하는 구조의 한계로 학계 통념을 벗어난 연구는 지원금을 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이 지난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지원 사례 10만 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기존 학설을 뒤집는 연구는 위험성이 덜한 연구보다 후속 연구비 지원 확률이 24.4% 낮았다.

미국 정부도 대학 밖 연구기관에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은 기존 연구기관 밖에서 혁신적 연구를 수행하는 ‘X-랩’ 사업에 15억달러(약 2조원)를 배정할 계획이다. 의회에서도 NIH에 비슷한 지원 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과제로 꼽힌다. 2023년 설립된 바이오의학 연구소 ‘아레나바이오웍스’는 투자자의 단기 수익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2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7회계연도 NSF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변수다. 이코노미스트는 “상업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기초 연구는 여전히 대학 몫으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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