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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관장'의 불명예 퇴진…'셀프 출품' 후폭풍에 유홍준 사의

입력 2026-10-21 13:53   수정 2026-10-21 16:20



‘소장품 셀프 출품’ ‘친일파 작품 부실 검증’ 논란을 빚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1일 “모든 비판은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관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취임 약 15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2008년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청장에서 물러난 지 18년 만에 또다시 문화유산 관련 기관의 수장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유 관장은 이날 오전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박물관에 보내주신 깊은 신뢰와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제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실추된 박물관의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해선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로 인해 실망하고 상처받은 국민 여러분과 애국지사 유족, 그리고 박물관 직원들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이해충돌·부실검증 논란 촉발

유 관장의 사의는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선보인 서예 작품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논란이 촉발했다. 당초 애국지사 박원근의 친필 휘호로 소개된 이 작품은 전시 출품작 중에서도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박 지사가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면서 유족조차 유품을 간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박 지사의 아들 박용현씨가 전시장을 찾아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잊힌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내 국민과 향유하는 국립박물관 전시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실제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라는 의혹이 외부에서 제기되고 검증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박물관이 뒤늦게 작품을 철거했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기초적인 고증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문화재계 안팎에서 쏟아졌다.

논란은 이 작품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더욱 커졌다. 박물관의 고증·조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배경에 관장 개인 소장품을 끼워 넣는 ‘소장품 셀프 출품’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를 전후해 유 관장이 ‘일반시국은’을 2019년 옥션에서 5만원에 구입하고, 이 글씨를 전시를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 담당 학예사에게 전시를 추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한 고증 오류에서 시작된 사태가 관장 이해충돌 문제와 박물관 검증 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 것이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직자와 학자로서 유 관장의 책임 회피성 처신도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유 관장이 작품이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진 후 “박물관 검증이 미흡했다”고 공식 사과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관장은 지난 19일 국감에서 관련 질의를 받자 “처음에 소장품이라고 밝히지 않은 건 내 개인 자랑이 될까봐였다”면서 “박중양의 작품으로 밝혀진 뒤에는 미술사가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슬아슬했다”…박물관 신뢰성 도마에


문화재계에선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유 관장이 취임 후 전시기획에 지나치게 깊게 관여하면서 관장 역할과 학예 전문인력 영역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지적에서다. 실제로 유 관장은 주요 전시 언론공개회에 직접 나서 작품을 설명하는 등 전시 전면에 나서 주목받았다. 문화유산을 대중 눈높이에서 풀어내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강점이 박물관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국립박물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처신으로는 다소 과하다는 우려가 뒤따랐던 이유다.

실제로 박물관이 지난 2월 서화실을 재개관하며 겸재 정선 주제 전시를 기획한 시점에 유 관장이 과거 자신의 베스트셀러에서 정선을 강조한 수정증보판인 <새로 쓰는 화인 열전: 겸재 정선>을 출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유 관장이 전시와 연계한 강연을 진행한 뒤 저서 사인회를 열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유 관장이 박물관 관장에 오른 뒤에도 작품을 수집했던 것으로 안다”며 “관장의 역할 등을 고려하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유 관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신뢰 회복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예 전문인력 독립성 보장 등 개인적 권위나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 전시 기획·검증 체계를 확립하는 동시에 이해충돌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650만 명이 방문하며 세계 3위 미술기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추진 중인 박물관 유료화 등 주요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관장은 “박물관 연구직들이 오랜 시간 성심을 다해 준비한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의 의의가 이 일로 인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비록 저는 떠나지만, 대한민국 역사와 문화의 심장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으로도 더욱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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