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과 ‘망국적 투기’. 이재명 정부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다. 정부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무브’를 유도하고 있지만, 올해 1~9월 주식 등 금융자산 매각대금 약 10조원이 주택을 사는 데 투입됐다. 전국 아파트 매수자 네 명 중 한 명꼴로 주식 매각대금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 주택 매입에 사용된 주식, 채권, 암호화폐 매각대금은 9조3273억원이다. 전체 주택 구입자금 약 150조원의 6.2%로, 지난해 연간 비중(3.1%)의 두 배 수준이다.
서울 주택 구입자금에서 금융자산 매각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7%에서 올해 9월까지 7.9%로 상승했다. 지방 비규제지역도 같은 기간 2.7%에서 4.3%로 높아졌다.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고려하면 규모는 더 클 수 있다.
전세보증금 등 임대보증금 비중은 2024년 16.8%, 지난해 14.7%에서 올해 6.7%로 낮아졌다. 실거주 의무 강화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증여·상속 비중은 3.5%에서 5.3%로, 기타 차입금은 2.3%에서 4.2%로 높아졌다.
정부가 부동산의 생산적 기능은 외면한 채 투기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주거 불안이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부르는 상황에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건설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하고 고용 창출 등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도 자금 이동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부동산 임대 수익과 양도차익을 혁신기업과 성장 펀드에 장기 투자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부동산 자금을 혁신기업의 성장 자본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 주식·코인 투자수익
고가 주택일수록 주식 등 매각 대금 의존도가 높았다. 30억원 이상 주택의 매수 자금 가운데 주식 등 매각 대금 비중은 올해 1월 16.0%에서 9월 18.9%로 상승했다. 지난해 연간 비중(7.25%)의 약 2.6배다. 반면 3억원 미만 주택은 같은 기간 2.3%에서 2.1%로 소폭 하락했다.
대출 규제가 주택 가격대별 자금 조달 방식의 차이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15 대책’에 따라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여기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매수 자금 중 대출금과 임대보증금 비중이 줄었다. 대출 규제와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방식) 제한으로 생긴 자금 공백을 주식 등 매각 대금과 증여·상속으로 메운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 3구와 용산구의 증여·상속 자금 비중도 지난해 4.7%에서 올해 1~9월 6.9%로 상승했다.
이에 비해 노원구와 구로구 등 서울 외곽 중저가 지역에서는 주식 매각 자금뿐 아니라 대출금 비중도 확대됐다. 전·월세 부담이 커지면서 대출을 끼고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자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70%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임대료가 계속 오르면서 실수요자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집을 사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기준 주택 매수 자금 중 대출금 비중은 올해 26.4%로 지난해(25.7%)와 비슷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8.7%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2.2%)의 네 배에 달했다. 경기(6.2%)와 인천(4.5%)도 입주 물량 감소와 실거주 의무 강화 등의 영향으로 전셋값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핵심 입지의 공공분양을 늘려 주거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 의원은 “주식은 생산적 금융, 집은 망국적 투기라는 정부의 이분법은 주식으로 번 돈으로 결국 집을 사는 현실을 외면한 허상”이라며 “대출과 갭투자를 틀어막으니 상속, 증여 등 ‘부모 찬스’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은서/심성미/강영연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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