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의 실력은 호황보다 위기에서 드러난다. 주문이 밀려들 때 가려졌던 문제가 시장의 문턱이 높아지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했던 K방산도 지금 그 시험대에 서 있다. 유럽에서는 자국 산업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국내에서는 뇌물과 원가 부정 의혹이 산업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오랜 세월 연구실과 생산 현장에서 쌓아 올린 성과가 일부의 잘못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유럽시장의 변화를 곧바로 K방산의 쇠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유럽의 재무장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구매의 조건이다. 유럽연합(EU)의 방위투자 지원제도인 SAFE는 최대 1500억유로의 대출을 제공하면서 지원 대상 조달에 원칙적으로 부품 원가의 65% 이상을 EU·우크라이나·적격 EEA/EFTA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요구한다. 방위비가 늘어난 만큼 한국의 수출도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통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유럽은 무기를 구매하는 동시에 자국의 공장과 일자리 및 기술을 확보하려 한다. 우리는 그동안 우수한 성능과 합리적인 가격 빠른 납기로 시장을 열었다.
그러나 상대국이 생산능력을 회복하고 산업 정책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이러한 강점만으로 다음 계약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이제 구매국이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 군이 이 무기를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 "전쟁이 나도 부품과 탄약을 공급받을 수 있는가", "우리 기업과 기술자는 무엇을 함께 만들 수 있는가" 등 이 질문을 해결하는 역량이 앞으로의 수출 경쟁력이다. 따라서 유럽 진출은 현지 생산과 공동 개발 정비와 교육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계약을 따내기 위해 기술과 생산물량을 무작정 넘겨주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현지에서 조립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설계 소프트웨어와 성능 개량에서 국내 기업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도 계약 총액에 더해 국내 부가가치와 협력업체의 참여 및 장기적인 기술 축적을 살펴야 한다. 큰 계약이 반드시 좋은 계약은 아니다.
외부의 장벽보다 더 엄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내부의 신뢰다. 최근 방위사업청은 뇌물공여와 원가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일부 업체에 대해 24개월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결정했다. 사법적 판단은 절차에 따라 가려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던지는 산업적 질문은 분명하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사업의 평가와 계약이 사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돼 왔는가 하는 것이다.
방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성장하고 군의 생명을 책임지는 산업이다. 수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잘못을 덮는다면 해외 고객에게 품질과 계약의 성실성을 어떻게 약속할 수 있겠는가. 처벌과 함께 부정행위가 들어설 틈을 줄여야 한다. 평가위원의 이해충돌을 점검하고, 원가 산정과 변경 이력을 추적하며, 내부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준법조직이 경영진에게 불편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통제도 작동한다. 수주 실적만을 보상하는 경영에서 품질과 납기, 준법의 책임을 함께 묻는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부정행위의 책임이 성실한 연구자와 협력업체에 무차별적으로 전가돼서도 안 된다.
위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책임과 기존 전력의 안정적인 유지, 협력업체의 대금 지급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면서도 국가가 축적한 기술과 인력의 기반을 지킬 정교한 행정이 필요하다. 산업 보호를 면책의 구실로 삼아서도 책임 추궁을 산업 전체의 불신으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 역시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전차와 자주포의 수출 성과는 소중하지만, 다음 전장의 경쟁력을 저절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인공지능(AI)과 무인체계, 전자전, 사이버 방호를 기존 무기체계에 연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전시회에서 보여줄 시제품의 숫자가 아니다. 군이 실제로 운용하고, 현장의 문제를 개발자가 고치며, 개선된 기술을 다시 적용하는 속도다. 작게 도입해 충분히 시험하고 성능이 확인되면 확대하는 획득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군, 국방과학연구소, 기업의 역할도 분명해져야 한다. 정부는 장기적인 수요와 예측 가능한 제도를 제시하고, 군은 시험과 운용 경험을 제공하며, 연구기관은 위험이 큰 핵심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과 품질로 책임져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대기업의 납품 단계에서 제값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혁신은 지속되기 어렵다. 공정한 기술 대가와 안정적인 발주가 인재와 공급망을 지키는 출발점이다.
부국강병은 수출계약서의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필요한 때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생산 기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는 제도, 다음 세대의 기술을 준비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K방산에 필요한 것은 성과를 더 크게 홍보하는 일이 아니다. 유럽의 변화에서는 시장을 읽고 국내의 문제에서는 제도를 고치며, 오늘의 수익을 내일의 기술로 돌리는 결단이다. 고객이 다시 찾고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산업을 만드는 것으로 그 길에 K방산의 미래가 있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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