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 이노베이터 '대우증권' 이름 역사 속으로

입력 2016-05-13 10:32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 중 하나인 '대우증권'이라는 이름이 3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미래에셋대우[006800]는 13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등기 법인명을 '대우증권주식회사'에서 '미래에셋대우주식회사'로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미래에셋증권[037620]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미래에셋대우 지분 43%를 인수하고 나서 대외적으로 부르는 이름인 커뮤니케이션 사명은 이미 미래에셋대우로바뀌었는데 이번에 법적 개명 절차까지 마친 것이다.

대우증권[006800]의 역사는 1970년 옛 동양증권 설립에서 시작됐다.

1973년 김우중 회장의 대우실업에 인수된 데 이어 1983년 삼보증권 흡수합병을계기로 대우증권이라는 간판을 걸게 됐다.

이후 대우증권은 국내 최초 코리아펀드를 출시, 국내 최초 민간 경제연구소 설립(1984년), 국내 최초 트레이딩룸 설치(1990년) 등 숱한 '국내 최초' 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 금융투자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대 들어 옛 사회주의권의 문호가 열리자 '죽의 장막'과 '철의 장막'을 뛰어넘어 현지 진출에 앞장선 것도 대우증권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상하이증권거래소 업무 인가를 취득했고 1995년과 1997년에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은행을 인수해 현지 영업에 나섰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로 대우증권은 큰 시련을 맞았다.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대우증권은 제일은행이 포함된 채권단으로넘어갔다.

2000년 채권단의 일원이던 산업은행이 실권주를 인수해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됐다.

산업은행에 인수되고 나서 대우증권은 대외적으로는 'KDB대우증권'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사명을 썼지만 등기상 법인명은 여전히 '대우증권주식회사'였다.

외환위기 이후 잠시 시련의 시기도 있었지만 대우증권은 국내 증권업계에서 강력한 영업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브로커리지(위탁매매)의 강자로 군림했다.

이와 더불어 채권 투자와 투자은행(IB) 분야에서도 강점을 지닌 증권사로 평가됐다.

외형적으로도 대우증권은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합병해 만들어진 4조5천억원대 NH투자증권[005940]에 이어 자기자본 기준 2위(3조8천700억원대) 자리를 고수해 왔다.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11월 합병을 마무리해 통합 '미래에셋대우'로 재탄생할 계획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합병 법인명에 '대우'란 이름을 남겨둔 것은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각별한 위상을 떨쳐온 대우증권의 계승자를 자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작년 대우증권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우증권이갖는 한국 증권사의 역사성을 고려하면 대우증권이라는 이름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며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래에셋대우증권을 새 사명으로 선호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새 회사 이름에 '대우'라는 두 글자가 남아 있는 한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선도해온 진취적인 대우증권의 DNA는 전승될 것"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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