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길 기자의 X-파일]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입력 2009-11-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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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W 한국경제TV 부동산팀 기자

- 미국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 연수중(Visiting Scholar)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


‘시애틀’ 하면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영화를 생각하며 낭만의 도시를 연상한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시애틀로 연수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년전 추억의 영화를 떠올리며 다른 연수자들보다도 유독 부러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도 한국에 계신분들과 통화를 할 때면 “정말 잠못들고 있냐? 영화같이 비가 많이 오냐? 볼거리가 많냐?”등을 물으시는 분이 많다.

필자도 사실 이곳에 오기전에 궁금했던 바라, 나름대로의 취재와 경험을 통해 시애틀의 진실과 오해를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이곳에 7월초에 왔는데, 시애틀의 7,8.9월은 개인적으로 경험한 날씨중에 가장 좋은 날씨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5, 10월중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모아놓은 기간으로 ‘축복받은 날씨’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만 올해는 이상기후로 시애틀 기상관측이래 가장 더운 날씨[평소 화씨70대(섭씨21도)이던 기온이 7월29일 103(39도)도 기록]를 기록해 사실 이곳 여름에 필요없는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고 냉방이 되는 공공건물에 시민들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 짧은 며칠을 빼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씨가 이곳 여름 기후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후 10월중순부터 지금까지 한 달 이상동안 거의 매일 비가 오고 있다.

평소에는 보슬비가 하루종일...때로는 한국 여름 장마같은 폭우가 쏟아지고, 잠시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흐리고 비오는 날이 계속되니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감돌고 이런 분위기는 겨울을 지나 내년 봄까지 지속된다고 하니, ‘비’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시애틀에 오면 ‘비’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시애틀의 비’는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와 세계적인 기업창출의 원동력이 되었다.

비가 일상화되다보니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우산을 들지 않고 쟈켓이나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그냥 비를 맞고 다닌다.

그리고 가방이나 손에는 항상 커피가 있다.

비오는 쓸쓸한 날씨에는 따뜻한 커피가 제격이어서 학교든 직장이든 거리든 시애틀 사람들 손에는 늘 커피가 있다.

원래 커피를 좋아했지만 필자도 이런 영향을 받아 보온병에 따뜻한 원두커피를 가득 담아 강의실이나 도서관 등 어디를 가든 하루종일 엄청 마시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이곳에는 자판기커피가 없어 커피값이 많이 드는데 갖고 다니면 절약도 되고 따뜻한 커피를 계속 마실 수 있어 좋다.

시애틀의 가을과 겨울은 ‘커피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곳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은 결국 ‘스타벅스’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켰고 시내 블록마다 외곽 주요지역마다 스타벅스같은 커피매장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시애틀의 비’는 또 이곳 사람들의 공공도서관 이용률을 미국 1위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시애틀 사람들은 거주지 마을도서관에서 토론·공부모임을 하고 책을 빌리며 또 각종 지역 행사를 즐겨 하고 있어 시민이용률이 상당히 높고 이러다보니 도서관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다.

특히 컴퓨터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잘 구비되어 있다.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궂은 날씨가 지속돼, 사람들이 실내생활을 즐기기 때문이다.(필자가 속한 워싱턴대는 가을학기 개강을 미국에서 가장 늦은 9월30일 했다. 대신 겨울학기는 길다. 모두 날씨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아마존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국제적인 기업의 본사가 시애틀에 있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또 시애틀은 아시아와 알라스카로 가는 미국 서북지역의 무역과 전략적 요충 항구도시여서 보잉사가 있고 코스코(costco) 역시 여기서 시작했다.

인구 60만의 시애틀, 메트로시애틀로 해도 인구 300만에 불과한 미국의 중급도시가 이렇게 큰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나무와 호수가 많고 비가 많이 내리는 바다에 면한 조용한 시애틀은 낭만의 도시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친환경 기업도시’라고 칭하고 싶다.



시애틀은 요즘 오후4시30분이면 밤이 된다. 12월엔 4시에 깜깜해진다고 한다.

위도가 높고 늘 비가 오기 때문이다. 놀거리나 이벤트도 별로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중심의 삷을 살아서 일찍 귀가하기 때문에 오후 4시면 이미 고속도로가 막히고 6시 이후면 퇴근정체가 풀린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 주로 집에서 저녁시간을 길게 보내기 때문에 시애틀에서 밤늦게 잠을 이루지 못할 이유는 거의 없는 셈이다.

오히려 일찍 잠자리에 들기 좋다. 아침 6시면 우리동네 커피매장이 문을 열고 7시면 다운타운쪽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한다.

직장인들이 일찍 자고 일찍 출근하기 때문이다. 영화속 건축가로 나오는 톰 행크스가 잠을 못이룬 이유는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해서이지, 시애틀을 즐기기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시애틀의 밤 비 속에 커피를 마시며 어떤 상념에 잠기거나 책을 보며 깊은 사유에 들어간다면 그 날 밤은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개별적으로는 특별할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양쪽 모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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