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유학 시절을 되돌아보니 벌써 15년이 지났다.
다양한 추억이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골프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동문들이 모이면 그 때의 즐거웠던 추억과 각자 겪은 우습고 엉뚱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곤 한다.
유학 전에는 연구소에 근무하던 관계로 골프장에 나가본 경험도, 취미도 없던 나였지만 미국에서는 퍼블릭 골프장이 많은데다 요금도 저렴하여 동문들과 자주 찾았다.
계산에 밝은 한 동기는 "정 선배(나이가 많은 탓에 이렇게 불리웠다), 여기에서 골프 한번 칠 때마다 한국에서 치는 것과 비교하면 한 15만원씩은 버는 거예요."라고 했다.
어찌 보면 우스운 셈법이지만 모두들 ''그거 말 된다. 열심히 나가서 연습하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방학에는 우리가 많이 모여 살던 Drexel Hill 근처 캅스크릭과 가락궁이라는 퍼블릭 골프장을 애용했다.
캅스크릭은 나무와 숲이 많아 골프를 치다보면 공이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OB 또는 러프지역)으로 넘어가 공 찾는 걸 포기하기 십상이었고, 가락궁은 나무와 숲은 적었지만 오르락내리락 언덕과 고갯길이 많아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유격훈련장'' 같은 곳이었다.
골프장 시설 역시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달라서 캐디나 그늘집, 전동 카트도 없어서 18홀 내내 힘들게 골프백을 끌고 다녀야 했다.
지금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싸다 해도 별로 갈 것 같지 않은 골프장이었는데 당시에는 왜 그리 열심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긴장하고 힘들던 MBA시절에 동기들이 같이 모여 운동이지만 일종의 긴장풀이 겸 우의를 다지던 동기모임이었고, 골프 실력이 향상되어 한국에 돌아가면 영업이든 뭐든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기 중 한 명은 공부할 때도 며칠씩 밤새우면서 사례 연구를 다 읽을 정도로 독한 성격이었는데, 골프에도 과연 열심이었다.
여름방학 중에는 매일 3회씩 - 새벽에 나가 18홀 돌고, 집에 와서 아침밥 먹고 다시 나가 뙤약볕 아래서 18홀을 두 번씩 돔 - 다녀오곤 했다.
우리들은 "너무 독하다. 그렇게까지 할 것 있나?"하면서도 내심 그의 열정과 체력을 부러워했다.
역시 만사가 노력한 만큼 보답 받는 모양이다.
한번은 그를 만났더니 요즘 골프수준이 파에서 1~2타 오버한 73~74타(싱글 중에서도 최고 수준)를 치는데, 고객들이 앞 다투어 날짜를 잡을 테니 한 수 가르쳐달라 한다는 것이었다.
"하긴 뭐든지 하려면 최고여야지. 적당히 해봐야 소용없어." 농담조였지만 살아온 인생 경험의 진심을 담아 동기들이 그를 축하했다.
그 외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많다.
공을 찾아 숲속으로 갔다가 뱀에 놀라 뛰쳐나온 일, 벼락 맞아 쪼개졌다는 고목을 보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며 천둥번개가 내리칠 때 클럽하우스로 달아나던 일, 돈을 번답시고 물 속에 빠진 골프공을 망으로 꺼내던 일 등등.
사람은 희로애락을 함께할 때 친해지고 정들고 비로소 서로를 진실 되게 이해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은 역시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했던 친구였다.
심지어 나는 힘이 들면 ''아, 이 어려움을 통해 또 진정한 지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라며 스스로 격려하기도 한다.
낮에 골프를 연습했다면 저녁엔 교회 교우들과 교제를 나눴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따뜻한 초청을 미처 거절하지 못해 모임에 참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경공부나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학 기간이 1년 가까이 되면서 한국에서 투병 중이었던 아내의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고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늘 걱정과 불안이 있어서인지 기도 중에 눈물이 흐르고 콧잔등이 시린 때가 많았다.
"난 반드시 나을 테니까 걱정 말고 공부나 잘해." 떠날 때 아내가 해준 씩씩한 말이다.
그렇지만 밤에 홀로 현관 앞에 나와 앉아있노라면 ''나 혼자 유학한답시고 아내와 애들 고생하게 두고 이렇게 타국에 나와 있어야 하나.'' 싶어 슬프고 외롭고 미안했다.
언젠가 기도하는 중에 불현듯 내 미국 유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인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그들의 신앙을 테스트 받아 단련되던 시기를 보냈던 것처럼, 내 신앙도 유학 시절을 보내며 더욱 깊어지고 성경 공부도 진실 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글. 정유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이사>
다양한 추억이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골프에 관한 것이다.
지금도 동문들이 모이면 그 때의 즐거웠던 추억과 각자 겪은 우습고 엉뚱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곤 한다.
유학 전에는 연구소에 근무하던 관계로 골프장에 나가본 경험도, 취미도 없던 나였지만 미국에서는 퍼블릭 골프장이 많은데다 요금도 저렴하여 동문들과 자주 찾았다.
계산에 밝은 한 동기는 "정 선배(나이가 많은 탓에 이렇게 불리웠다), 여기에서 골프 한번 칠 때마다 한국에서 치는 것과 비교하면 한 15만원씩은 버는 거예요."라고 했다.
어찌 보면 우스운 셈법이지만 모두들 ''그거 말 된다. 열심히 나가서 연습하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방학에는 우리가 많이 모여 살던 Drexel Hill 근처 캅스크릭과 가락궁이라는 퍼블릭 골프장을 애용했다.
캅스크릭은 나무와 숲이 많아 골프를 치다보면 공이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OB 또는 러프지역)으로 넘어가 공 찾는 걸 포기하기 십상이었고, 가락궁은 나무와 숲은 적었지만 오르락내리락 언덕과 고갯길이 많아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유격훈련장'' 같은 곳이었다.
골프장 시설 역시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달라서 캐디나 그늘집, 전동 카트도 없어서 18홀 내내 힘들게 골프백을 끌고 다녀야 했다.
지금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싸다 해도 별로 갈 것 같지 않은 골프장이었는데 당시에는 왜 그리 열심이었을까.
돌이켜보면 긴장하고 힘들던 MBA시절에 동기들이 같이 모여 운동이지만 일종의 긴장풀이 겸 우의를 다지던 동기모임이었고, 골프 실력이 향상되어 한국에 돌아가면 영업이든 뭐든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기 중 한 명은 공부할 때도 며칠씩 밤새우면서 사례 연구를 다 읽을 정도로 독한 성격이었는데, 골프에도 과연 열심이었다.
여름방학 중에는 매일 3회씩 - 새벽에 나가 18홀 돌고, 집에 와서 아침밥 먹고 다시 나가 뙤약볕 아래서 18홀을 두 번씩 돔 - 다녀오곤 했다.
우리들은 "너무 독하다. 그렇게까지 할 것 있나?"하면서도 내심 그의 열정과 체력을 부러워했다.
역시 만사가 노력한 만큼 보답 받는 모양이다.
한번은 그를 만났더니 요즘 골프수준이 파에서 1~2타 오버한 73~74타(싱글 중에서도 최고 수준)를 치는데, 고객들이 앞 다투어 날짜를 잡을 테니 한 수 가르쳐달라 한다는 것이었다.
"하긴 뭐든지 하려면 최고여야지. 적당히 해봐야 소용없어." 농담조였지만 살아온 인생 경험의 진심을 담아 동기들이 그를 축하했다.
그 외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많다.
공을 찾아 숲속으로 갔다가 뱀에 놀라 뛰쳐나온 일, 벼락 맞아 쪼개졌다는 고목을 보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며 천둥번개가 내리칠 때 클럽하우스로 달아나던 일, 돈을 번답시고 물 속에 빠진 골프공을 망으로 꺼내던 일 등등.
사람은 희로애락을 함께할 때 친해지고 정들고 비로소 서로를 진실 되게 이해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은 역시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했던 친구였다.
심지어 나는 힘이 들면 ''아, 이 어려움을 통해 또 진정한 지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라며 스스로 격려하기도 한다.
낮에 골프를 연습했다면 저녁엔 교회 교우들과 교제를 나눴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따뜻한 초청을 미처 거절하지 못해 모임에 참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경공부나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학 기간이 1년 가까이 되면서 한국에서 투병 중이었던 아내의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고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늘 걱정과 불안이 있어서인지 기도 중에 눈물이 흐르고 콧잔등이 시린 때가 많았다.
"난 반드시 나을 테니까 걱정 말고 공부나 잘해." 떠날 때 아내가 해준 씩씩한 말이다.
그렇지만 밤에 홀로 현관 앞에 나와 앉아있노라면 ''나 혼자 유학한답시고 아내와 애들 고생하게 두고 이렇게 타국에 나와 있어야 하나.'' 싶어 슬프고 외롭고 미안했다.
언젠가 기도하는 중에 불현듯 내 미국 유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인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그들의 신앙을 테스트 받아 단련되던 시기를 보냈던 것처럼, 내 신앙도 유학 시절을 보내며 더욱 깊어지고 성경 공부도 진실 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글. 정유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