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 W] 휴대폰 자급제의 허와 실

입력 2012-03-28 18:52   수정 2012-03-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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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는 5월이면 블랙리스트 제도로 알려진 휴대폰 자급제도가 도입됩니다.

이 제도, 이동통신 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산업팀 신인규 기자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블랙리스트 제도라는 용어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렸죠.

이계철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취임한 뒤에는 블랙리스트라는 말 대신 단말기 자급제도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까?

<기자> 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 방송통신위원회 측에서 새로운 용어를 가져왔지만 본질은 똑같습니다.

말 그대로 분실이나 도난당한 휴대전화만 블랙리스트로 따로 관리하고 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휴대폰은 어디서든 개통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도인데요, 이 `어디서든` 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통신사가 독점했던 휴대전화 유통 시장이 일대 변화를 맞게 되는 겁니다.

화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종로의 한 휴대폰 액세서리 매장.

팬택의 자회사인 팬택씨엔아이가 운영하는 이 곳은 5월부터 휴대전화 유통 전문매장으로 변신합니다.

<인터뷰> 심상우 라츠 매니저

"5월 블랙리스트 제도에 맞춰서, 라츠 매장에 가방이나 잡화류는 철수를 합니다. 휴대폰 전문 매장으로 변하는 건데, 팬택 단말기 뿐 아니라 이통사·제조사 구분 없이 모든 기종을 살 수 있습니다."

제조사가 휴대전화 유통 시장에 직접 뛰어든 겁니다.

대기업 제조업체들은 미리 구축된 가전 양판점의 유통망을 휴대폰 판매에 활용할 전략입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기기를 전문으로 파는 모바일 샵을 올해 안에 100개 까지 늘리고, LG전자도 약 300개에 달하는 베스트샵 직영점에서 휴대전화를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제조사들이 직접 판매망을 정비하는 이유는 오는 5월 실시될 휴대폰 자급제도 때문입니다.

휴대폰 자급제가 실시되면 이통사가 운영하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단말기를 사야만 하는 제한이 풀리게 됩니다.

이통사와 2년 약정을 맺어 휴대폰을 사는게 일반적이었던 지금과 다른 구매형태가 가능해집니다.

제조사나 다른 유통망으로부터 단말기를 먼저 사고, 약정에 묶일 필요 없이 더 저렴한 요금제를 찾아 휴대폰을 개통할 수 있는 겁니다.

제조사의 유통망이 강화되면 기존의 휴대폰 판매점은 상대적으로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휴대전화 판매점 사장

"판매점이 마구 늘어났던 이유 중에 하나가, 망해도 손해가 없다는 거에요. 판매점은 그런게 없어요. 재고를 다 사놓은 대리점에 받아서 팔기 때문에. (그런데 블랙리스트 제도가 되면 직접 재고를 구매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가 있는 건가요?) 그렇죠. 이제.."

제도가 시행되면 기존 제조사나 이통사의 유통망 뿐 아니라,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새로운 풍경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동통신시장 20년만의 대혁명으로까지 불리는 휴대전화 자급제.

새로운 제도를 앞두고 유통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앵커> 제도대로라면 앞으로 신학기나 졸업같은 때 노트북 대신 고가의 스마트폰을 사주는 일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앞으로 통신 주파수만 맞으면 우리나라엔 나오지 않은 외국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들여와서 유심칩을 꽂아 쓸 수도 있습니다.

<앵커> 그런 새로운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는데, 정부가 이 휴대전화 자급제를 도입하려고 하는 주된 이유는 통신비 인하라고 보는게 맞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3사의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통신 시장에 경쟁을 촉진시켜서 통신비를 내리겠다는 겁니다.

기존 제도가 단말기 가격 부담을 덜고 가입할 수 있었다면 휴대폰 자급제는 비싼 요금제와 최대 30개월에 달하는 약정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100만원에 가까운 고가 단말기를 보조금 없이 구입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부담을 저렴한 요금제로 덜어주게 되는 건데요.

현재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휴대폰 자급제를 대비해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한 전용 요금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입안한 방송통신위원회 측의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이승진 방통위 통신이용제도과

"단말기 자급제도가 시행이 되면 유통망 간의 단말기 경쟁이 내려가서 궁극적으로 단말기 가격이 인하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2G폰을 제외한 모든 단말기가 본 제도에 포함될 예정이며, 앞으로는 단말기 유통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와 업계가 손을 잡고 지원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가전매장이나 마트 등에서 단말기를 구입해서 선불 요금제나 MVNO 요금제를 이용하시면 요금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등 이용자의 편익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설명대로라면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인데요. 시행에 예상되는 문제는 없습니까?

<기자> 네. 일단 이 단말기 자급제도가 현재 가장 크게 성장하는 LTE 시장에서는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료를 함께 보시죠.

지금 보시는 그림은 이동통신 3사의 LTE 주파수 대역입니다.

SK텔레콤이 800Mhz 대역에서 20Mhz폭, KT가 1.8Ghz 대역에서 20Mhz폭, 그리고 LG유플러스가 800Mhz 대역에서 20Mhz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 통신사 별로 사용하는 주파수가 다른데, 현재 나오는 LTE 단말기는 모든 주파수를 다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정 통신사의 주파수만 잡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 KT에 가입한 이용자들은 휴대폰 자급제가 도입돼도 옵티머스 뷰나 LTE를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앵커> 주파수 대역을 다 잡아주는 단말기를 만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요?

<기자> 한 단말기 안에 모든 주파수를 다 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추가되는 칩 자체의 원가가 높지는 않지만, 이 부분을 위해서 라인이라든지 폰 내부 설계를 다시 하는 일은 제조사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휴대폰 자급제를 위해 방통위가 LTE 주파수를 다 잡는 단말기를 만들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방통위가 규제할 수 있는 기관은 기본적으로 통신업체지 제조업체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국내 제조업체에 그러한 방식을 강제한다고 해도 애플이나 모토로라같은 외국업체는 손 댈 방법이 없어, 방통위 역시 이 부분은 시장 자율에 맡기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렇다면 제조업체가 지금의 방식을 버리고 모든 주파수를 잡는 기기를 만들어 내느냐.

그럴만한 유인이 제조사에게 있느냐를 봐야 할텐데 이 역시 아직까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LTE 시장에서는 이동통신사의 망을 빌려 저렴한 요금제로 판매하는 이동통신망 재판매 사업, MVNO와 같은 요금제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당장 29일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하는 MVNO 활성화 종합대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방통위 측에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통신업계에서는 이통3사가 채 전국망을 구축하지 못한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LTE를 MVNO 의무서비스에 포함 시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아까 방통위의 설명대로 선불요금제나 저가형 요금제를 통한 통신비 인하가 LTE 시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실제 소비자가 휴대폰을 사게 되는 유통망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기자> 네, 또 하나 예상되는 문제점은 대형마트나 편의점과 같은 유통업계가 휴대전화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설만한 사업성 또한 미지수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휴대전화 시장은 상당히 많은 액수의 마케팅비가 필요했고, 소비자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판매장려금이다, 리베이트다하는 보조금들. 이 부분은 소비자의 통신비에서 나온 판촉비용인데요.

대형마트와 같이 단말기만 파는 유통망 측에서는 가격 경쟁이 되려면 판촉비용을 통신사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방통위는 이 문제에 대해 대형 유통망과 협의를 계속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 부분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단말기 출고가 현실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강승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 4는 해외에서 사는 것보다 국내에서 사는 게 저렴했지만, 국내 제조업체의 휴대폰은 해외보다 최대 2.5배 가량 높게 팔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국내에선 휴대폰을 비싸게 팔고 있다는 건데, 결국 이 부분이 해결되면 보조금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어 새로운 유통망의 경쟁력이 생기게 됩니다.

보조금과 출고가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반대로 보조금이 줄어들면 출고가도 떨어질 여지가 있습니다.

최근 한 통신사는 리베이트와 함께 추가로 지원되는 보조금을 폐지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LTE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의미있는 변화이고, 보조금과 함께 통신비가 내려갈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결국 제도의 성패 여부는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실제 부담이 줄어드느냐,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과 함께 시장을 철저히 감시하는 일 역시 필요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휴대폰 자급제도의 취지가 나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통신시장을 이 제도가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여기에는 많은 물음표가 붙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방통위는 4월 말에 이 단말기 자급제에 대한 세부시행안을 발표합니다.

유통 권력을 쥐고 있던 이통사와 새로운 유통망 간의 형평성을 얼마나 맞출 수 있을지 등이 여기에 포함될 예정인데요.

휴대폰 자급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자들이 이 제도에 익숙하도록 널리 알리고, 실제로 이익을 보는 소비자가 늘어나도록 하는 조치가 꾸준히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지금까지 신인규 기자와 휴대폰 자급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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