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졌던 유로존 재정,금융위기가 또 다시 고객를 들었다. 스페인에 대한 전면적인 구제금융 가능성과 그리스의 긴축목표 달성에 대한 실망감이 겹치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혔다. 금융시장의 위축은 실물경제로 이미 전이되면서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 뿐만아니라 중국과 브라질, 인도 처럼 최근까지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신흥국마저 침체된 경기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유럽이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정치적 분열이라는 유럽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마저 쉬워보이지 않는다.
19세기 통일을 이룩한 이래 독일은 유럽을 뒤흔들었던 재상들을 배출해왔다. 제1제국의 탄생과 이후 교묘한 외교로 독일을 유럽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던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폭력과 선전선동으로 1차 대전의 패배 속에서 자존심이 상했던 독일인들을 움직여 수상에 이어 총통의 자리까지 올라 유럽의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히틀러. 미국과 소련을 설득해 45년 만에 갈라진 두 독일을 통일로 이끌었던 헬무트 콜 수상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앙겔라 메르켈 현 독일 총리는 2005년 11월부터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이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보수 우파성향의 기민당(CDU)과 진보 좌파성향의 사민당(SPD)이라는 양대 정당과 함께 녹색당 등 군소정당이 합종연횡에 따라 정부를 구성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으로 외교를 비롯한 대외적 역할만 수행한다. 메르켈 총리는 옛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정계에 진출해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기민당 내부의 지지기반은 그리 강하지 않다. 오히려 2009년부터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1989년 내무장관 시절의 볼프강 쇼이블레)
1942년 생이니까 올해 70세인 이 노회한 정치인은 본래 변호사였다. 부친이 장관의 자문관, 친형도 주정부 장관을 지낼 정도로 독일에서도 사회지도층 집안의 일원이라고 하겠다. 쇼이블레는 헬무트 콜 총리 내각에서 연방특임장관, 총리부장관, 내무장관 등 요직을 거치면서 통일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야당이 되었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기민당 당수까지 올랐고 메르켈 총리 취임과 함께 내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메르켈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고 실무에서도 경험이 많은 쇼이블레를 재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한다.
재무장관으로 3년을 보낸 쇼이블레는 현재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이른바 PIIGS 국가들의 연쇄부도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쇼이블레는 `무조건 퍼주기`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경쟁국의 수많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대국에 올라선 사실을 상기시키며 주변 이웃나라에게도 자력갱생을 강조한다.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놀고 먹으려는 `불량국가(?)`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6월말 유럽 정상회담에서 메르켈 총리가 한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쇼이블레의 강경한 태도는 변한 것이 없다. 과거 쇼이블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거나 러시아의 인권침해 사례를 비판하면서 일반적인 독일 정치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내무장관으로 이중국적을 찬성하기도 했고, 개인의 DNA정보 공개나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원칙론자이지만 뜨거운 감자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다.
쇼이블레의 유로존 위기에 대한 입장은 간단하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로존의 맹주인 독일은 최소한의 지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유로화를 포기할 생각도 없다. 원칙론자이자 강경파인 쇼이블레에게 남은 유일한 걸림돌은 `시간`이다. 타협 없는 독일의 강경한 입장이 자칫 유로존의 뿌리를 흔들 경우 책임 `0순위`는 당연히 쇼이블레다. 내년에는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사민당과 총선에서 일전을 겨뤄야만 한다. 총선에 패배할 경우 그가 이끌어온 경제적, 외교적 강경책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치적 생명을 걸고 난마처럼 얽힌 유로존의 실타래를 빠른 시간 내에 풀어내야만 한다.
(2012년 4월 워싱턴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쇼이블레)
쇼이블레는 휠체어를 탄다. 지난 1990년 선거 유세중 한 정신병자의 총격을 받아 얼굴과 척수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줄곧 휠체어를 타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최전선의 자리를 지켜왔다. 유럽 최대강국의 고집불통 곳간지기가 그동안 보여줬던 자신의 원칙을 밀어붙일지, 파격적인 결정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정치적 `끼`를 다시 보여줄 것인지 주목된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남들을 올려볼 수 밖에 없지만 유럽의 운명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또 다른 `철의 재상`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
19세기 통일을 이룩한 이래 독일은 유럽을 뒤흔들었던 재상들을 배출해왔다. 제1제국의 탄생과 이후 교묘한 외교로 독일을 유럽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던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폭력과 선전선동으로 1차 대전의 패배 속에서 자존심이 상했던 독일인들을 움직여 수상에 이어 총통의 자리까지 올라 유럽의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히틀러. 미국과 소련을 설득해 45년 만에 갈라진 두 독일을 통일로 이끌었던 헬무트 콜 수상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앙겔라 메르켈 현 독일 총리는 2005년 11월부터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이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보수 우파성향의 기민당(CDU)과 진보 좌파성향의 사민당(SPD)이라는 양대 정당과 함께 녹색당 등 군소정당이 합종연횡에 따라 정부를 구성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으로 외교를 비롯한 대외적 역할만 수행한다. 메르켈 총리는 옛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정계에 진출해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기민당 내부의 지지기반은 그리 강하지 않다. 오히려 2009년부터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1989년 내무장관 시절의 볼프강 쇼이블레)
1942년 생이니까 올해 70세인 이 노회한 정치인은 본래 변호사였다. 부친이 장관의 자문관, 친형도 주정부 장관을 지낼 정도로 독일에서도 사회지도층 집안의 일원이라고 하겠다. 쇼이블레는 헬무트 콜 총리 내각에서 연방특임장관, 총리부장관, 내무장관 등 요직을 거치면서 통일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야당이 되었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기민당 당수까지 올랐고 메르켈 총리 취임과 함께 내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메르켈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고 실무에서도 경험이 많은 쇼이블레를 재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한다.
재무장관으로 3년을 보낸 쇼이블레는 현재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이른바 PIIGS 국가들의 연쇄부도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쇼이블레는 `무조건 퍼주기`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경쟁국의 수많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대국에 올라선 사실을 상기시키며 주변 이웃나라에게도 자력갱생을 강조한다. 독일 국민의 세금으로 놀고 먹으려는 `불량국가(?)`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6월말 유럽 정상회담에서 메르켈 총리가 한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쇼이블레의 강경한 태도는 변한 것이 없다. 과거 쇼이블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거나 러시아의 인권침해 사례를 비판하면서 일반적인 독일 정치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내무장관으로 이중국적을 찬성하기도 했고, 개인의 DNA정보 공개나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원칙론자이지만 뜨거운 감자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다.
쇼이블레의 유로존 위기에 대한 입장은 간단하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로존의 맹주인 독일은 최소한의 지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 유로화를 포기할 생각도 없다. 원칙론자이자 강경파인 쇼이블레에게 남은 유일한 걸림돌은 `시간`이다. 타협 없는 독일의 강경한 입장이 자칫 유로존의 뿌리를 흔들 경우 책임 `0순위`는 당연히 쇼이블레다. 내년에는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사민당과 총선에서 일전을 겨뤄야만 한다. 총선에 패배할 경우 그가 이끌어온 경제적, 외교적 강경책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치적 생명을 걸고 난마처럼 얽힌 유로존의 실타래를 빠른 시간 내에 풀어내야만 한다.
(2012년 4월 워싱턴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쇼이블레)
쇼이블레는 휠체어를 탄다. 지난 1990년 선거 유세중 한 정신병자의 총격을 받아 얼굴과 척수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줄곧 휠체어를 타면서도 정치인으로서 최전선의 자리를 지켜왔다. 유럽 최대강국의 고집불통 곳간지기가 그동안 보여줬던 자신의 원칙을 밀어붙일지, 파격적인 결정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정치적 `끼`를 다시 보여줄 것인지 주목된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남들을 올려볼 수 밖에 없지만 유럽의 운명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또 다른 `철의 재상`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진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