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토론이란…?

입력 2012-12-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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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6편. 어린이들에게 토론이란…?

대화가 가진 가능성

우린 매일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숨겨진 나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도 하고, 친구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할 때도 있다. 예상컨데 모두가 대화의 과정이 순탄하길 바라지만, 대화의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피할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수반되는 관계적 갈등과 문제.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전환한다면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많은 일들을 특히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경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존재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나는 어린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칼럼 ‘과학과 상상의 경계’에서 나타난 OHP반사판에 올려진 손의 위치와 벽에 비춰진 손 그림자의 위치가 반대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약 3개월 동안 아이들은 왜 그림자의 방향이 실제 손을 올려 놓은 위치와 반대로 보이는지에 대해서 6가지의 가설을 내놓았다. 3개월 동안 아이들은 빛과 그림자라는 매력에 심취하여 과학적 현상에 대해 탐색해 보고 연구해 보는 몰입의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여섯 살 어린이들이 갖는 몰입을 통해 드러난 6가지 가설은 듣고 있으면 나름의 논지와 상대의 마음을 흔들만큼 과학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린이들 사이에서 이런 놀라운 가설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은 아니다. 생각의 흐름의 물꼬를 튼 어린이 한 명이 있었으니 그 어린이는 다름 아닌 바람 이야기를 꺼낸 영훈이다. 영훈이의 ‘바람 때문에 그림자가 뒤집어졌다’라는 아이디어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게 말이 돼?’할 정도로 파격적이었고 나는 ‘풋’ 하고 웃음을 참아야 할 정도로 재미있는 혹은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바로 생각 파괴자 영훈이의 의견 덕분에 이 안건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단숨에 아이들 사이의 핫 이슈가 되어버렸다.

토론의 출발점 :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사실 영훈이가 처음 이 이야기를 꺼낼 때 교실의 구성원들의 반응은 요즘 날씨처럼 차디차기만 했다. 너무 파격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고 또 다른 하나는 평소 영훈이라는 아이의 캐릭터가 약간 유별났기 때문이다. 교사의 말에 베시시 웃으며 ‘몰라요~~ 싫어요~~~’ 라고 끊임없이 말했기 때문에 구성원들 사이에서 영훈이는 느리고 답답하고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약간은 엉뚱한 친구였다. 물론 나에게 영훈이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었다. 대세를 거스르며 ‘No’를 말할 수 있는 영훈이의 대담함과 여유로움은 항상 나를 감동 시키며 큰 교훈을 주었고 난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영훈의 캐리터가 부럽기까지 하였다. 물론 영훈이가 나의 반이었다면, 참으로 쉽지 않은 어린이었음에 틀림 없지만 말이다.

그런 영훈이가 내 놓은 ‘종이처럼 그림자도 바람에 뒤집어 진 것이다.’라는 의견은 평소 영훈이와 성격처럼 조금 엉뚱했고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꺼내기가 무섭게 옆에 앉아 있던 모범생 진아는 팔꿈치로 영훈이의 허리춤을 푹하고 찔렀다. 동시에 진아의 시선은 영훈이의 반대 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말도 안돼 어이없어’라는 표정 ‘그건 아니지’라는 말을 온 몸으로 하고 있었다. 바로 이어서 진아는 손을 들어 위에 동그란 것(볼록렌즈) 때문에 그림자가 뒤집어진 것이라는 의견을 재차 내놓았다. 난 순간 멈칫하며 망설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진아가 ‘정답’을 밝혔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진아의 영훈이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비록 정답이 아니지만, 뭔가 자신만의 논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 역시 가치있는 의견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마치 성인처럼 영훈이의 생각을 정답의 잣대로 판단하며 ‘응징’의 팔찌르기를 한다?

난 약간의 교사로서의 본능을 발휘해 두 가지 의견을 동등한 가설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난 이 결정을 바로 실천하기 위해 난 팔장을 끼며 진지함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 벌써 두 가지 생각이 나왔다. 동그란 것 때문에 그렇다. 저기 위에 달린 저 동그란거 말하는 거야 진아야? (고개를 끄덕이는 진아) 그리고 영훈이는 바람 때문에 그렇다……? 흠…. 선생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근데 바람은 좀 신기하네? 흠… 하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그림자도 종이처럼 그렇게 무거울 거 같진 않으니까?’ 그러자 영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맞아요~ 그리고 바람이 진짜 세게 불고 비도 오고 그러면 집도 날아가고 나무도 쓰러지고 그래요~’ 라며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였다. 그러자 교실은 순간 조용해졌다. 듣고보니 영훈이의 의견이 아주 틀린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풍처럼 센 바람 정도라면 확실히는 몰라도 그림자쯤은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만들어 간 토론문화 : 대화, 경청과 소통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는 열쇠

이 날의 이야기 나누기 시간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실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 하다. 이후 아이들은 엉뚱해 보이는 아이디어 조차 하나의 가설로서 받아들이며 감정이 아닌 논지로서 반박하고 혹은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우린 토론을 지속해 가면서 A의견이 맞다 혹은 더 옳다 혹은 B의 의견이 더 가치있다라는 식의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한 생각을 검토하고 재배열해 보고 또 다른 생각이 들어왔을 때 다시 생각들을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덕분에 우린 A와 B 혹은 C중 선택할 필요없이 두 가지 이상의 아이디어들이 섞인 H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려고 하는 태도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교실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 맥락적인 것들은 말로 해서는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듯 하다. 아이들에게 상대의 생각을 존중해 라고 말하기보다 각자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문화를 교실에 널리 널리 퍼뜨려 보자.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게 되는 관계의 연결고리들이 형성되는 듯 하다. 나와 너를 존중하는 너와 나의 관계말이다. 존중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결국 우리 각자는 더 많은 존중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이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해 상대를 존중하는 실천을 바로 시작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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