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의 역설'...위기의 자본주의 해법은?

입력 2013-03-04 09:40   수정 2013-03-04 09:45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경영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적인 혁신,성장 전문가로 통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 석좌 교수이기도 한 크리스텐슨은 1997년 출간된 `혁신가의 역설(The Innovator`s Dilemma)`를 통해 혁신의 종류를 분류하고 혁신을 지속한 초우량 기업이 왜 시장지배력을 잃어가는지 그 원인을 파헤쳐 학계와 기업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인텔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그의 책을 읽자마자 크리스텐슨 교수를 즉시 인텔의 경영자문으로 위촉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크리스텐슨은 이번에는 `자본가의 역설(Capitalist`s dilemma)`을 주장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왜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 크리스텐슨은 내년에 새 저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다보스 포럼을 앞두고 기업경영의 혁신과 성장, 그리고 그 함정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크리스텐슨의 기고문을 통해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그는 현재 미국의 자본주의는 일종의 `풍요 속의 빈곤`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재무제표에는 사용되지 않는 자본이 넘치지만 사모펀드와 시장은 기업의 자본사용에 난색을 표한다. 자본가들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론상으로는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될수록 자본주의는 성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다 한 가운데 떠있으면서도 마실 물이 부족한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에 미국 경제가 처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본가들이 성장을 촉진하는 투자가 아니라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발생한다는게 크리스텐슨의 생각이다.

그는 혁신을 3가지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자율적 혁신`인데 과거에 비싸고 복잡해서 소수의 사람들만 사용하던 재화를 간편하고 싸게 만들어서 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을 말하는데 그 사례로는 포드의 `모델T`,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이 언급된다. 자율적 혁신은 이 재화를 생산하고 유통시키고 서비스 하는 사람들의 고용을 창출한다.

다음은 `연속된 혁신`으로 기존 재화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시킨다. 도요타의 프리스우스가 더 많이 팔리면 캠리는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혁신의 대부분은 바로 이 자율적 혁신이 차지하는데 경제 활성화를 유지하는데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일자리나 자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과거의 재화를 오늘의 재화로 대체하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효율적 혁신`인데 이것은 현존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제조, 유통비용을 낮춘다. 도요타가 자동차 제조과정에 `Just-in-tim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거나 보험사인 게이코(Geico)가 온라인으로 보험 언더라이팅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효율적 혁신은 일자리를 오히려 줄인다. 보다 적은 인력으로 기존의 일을 완수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방된다. 효율적 혁신이 없다면 자본은 대차대조표상 재고, 운전자본, 기타 항목으로 묶이게 된다.

기업들은 통상 이같은 혁신의 과정을 겪는다고 크리스텐슨은 주장한다. 초기의 IBM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일부 대기업이나 소유할 수 있었지만 자율적 혁신을 통해 탄생한 PC는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 HP 같은 기업은 PC를 제조하고 판매하기 위해 수만 명을 고용해야만 했다. 그 다음 단계로 치열한 경쟁 때문에 보다 성능이 뛰어난 PC를 만들어야 했다. 연속된 혁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업의 여러 부분을 아웃소싱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유휴자본은 공급망 관리에 투자됐다.

3가지 혁신은 순환을 하면서 경제를 살찌우고 순환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크리스텐슨은 역설한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 경제는 이같은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설명이다. 넘쳐나는 자본이 효율적 혁신에만 재투자되고 있고 과거와 같은 자율적 혁신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상가인 조지 길더가 희소성이 높고 값비싼 자원을 아껴야 하는 반면 풍부하고 싼 자원은 쉽게 낭비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고 크리스텐슨은 설명한다. 1930~1950년대 새로운 경영사상이 도입되면서 당시에 부족했던 자본은 투입대비 매출과 순익을 극대화 해야한다고 여겨졌다. 경영진은 단기간에 맞춰 자본의 효율성을 측정하기 시작했고 이는 기업이 자율적 혁신을 등한시하고 연속적, 효율적 혁신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혁신가의 역설`에서 바로 이같은 혁신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성공적인 기업이 시장의 요구를 잘못 판단함으로써 경쟁에서 뒤쳐지고 결국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크리스텐슨은 현대의 투자자들은 자본이 부족할 당시에나 통하던 원칙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본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부하고 자본비용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게임의 룰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워싱턴 정치가와 관료들이 해변가에서 소방호스로 바다을 향해 무한정 물을 퍼붓고 있는 상황에 비유한다. 이제는 넘쳐나는 자본 때문에 단기투자에 대한 수익률과 장기투자에 대한 수익률에서 큰 차이가 없다.

크리스텐슨은 가격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자본 대신에 교육과 같은 자원을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적정자본수익률은 앞으로 적정교육에 투자되는 자본의 수익률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교육에 대한 낮은 투자와 자원배분은 곧 적은 일자리와 저급 인력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권에 대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틀렸다고 밝힌 크리스텐슨은 공화당은 부자들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여기는 점에서 틀렸다고 지적한다. 현실에서 미국 최고의 부자 대다수는 일자리 창출 보다는 효율적 혁신을 추구하는 곳에 투자를 해왔다. 민주당도 공화당과 같은 착각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부자들의 돈을 모두에게 나눠준다고 할 지라도 이것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적 혁신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연속된 혁신에서만 만들어진 재화를 소비하는데 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크리스텐슨의 처방은 간단하다. 자본의 투자기간에 따라 과세를 하자는 것이다. 단기투자에 대한 과세는 개인소득세율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대신 장기투자에 대한 과세율은 낮추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5년 이상의 장기투자에는 `0%의 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심지어 8년 이상 투자할 경우 세율을 `마이너스(-)`로 하자는 과감한 주장도 한다. 부자들에게 장기투자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미국 경제 성장의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같은 방안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각종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최소한 과거에는 통했던 정책이 현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언뜻보기에는 직관적이지 않았던 이같은 아이디어가 미국 경제 회생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지적대로 `자본가의 역설`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혁과 고통분담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치,경제 틀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간결하지만 미국식 자본주의의 단점을 꿰뚫는 그의 진단과 처방만은 충분히 참고할만 하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 자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21세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이 더욱 중요하고 희소하다. 만들기는어렵지만 일단 선순환에 성공하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제18대 대통령 취임을 맞아 한국의 문제를 근본부터 치료하는 동시에 새로운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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