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축소나선 정부 '위기 아니라더니‥'

이근형 기자

입력 2014-02-25 18:07  

- 4분기 대출 증가액 `사상최대`
- 전세값 폭등에 중산층도 은행으로..
- 가계빚 위기 아니라던 정부, 말바꿔 축소대책 내놔




▶ 매매·전세·월세, 대출없인 못사는 가계


서울시 이촌동에 사는 은행원 A씨(36)는 요즘 전셋집 마련으로 피가 마를 지경이다. 2년 전세계약이 끝나 재계약을 하려고 하자 집주인이 전세금 7천만원을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세들어 살던 아파트는 2년 전엔 자신의 집이었다. 집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질 않자 A씨는 비싼 대출이자 갚기를 포기하고 집을 판 뒤 그 집에 전세로 들어가 2년을 살았다.


하지만 2년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셋값이 터무니없이 올랐지만 달리 탈출구가 없었다. 월세는 아무리 싸도 은행 대출이자보다 비쌌고, 집을 사자니 이자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때문에 A씨는 떠밀리다시피 전세를 재계약하기 위해 추가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A씨는 "아내도 은행을 다닌다. 맞벌이 부부에 그나마 소득여건이 나은 우리가 이정도라면 일반 직장인들의 고통은 훨씬 더 심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 가계부채 1,021조원‥증가폭은 `사상최대`


주택과 가계부채 문제가 서민을 넘어 중산층의 위기로까지 전이되는 양상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날로 더해 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천21조3천억원으로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4분기중 가계빚 증가액만 27조7천억원으로 한국은행이 통계집계를 시작한 지난 2003년 이래 가장 많이 불어났다.


생애최초주택구매자들이 연말 세제혜택 종료를 앞두고 대거 몰리면서 이같은 부채폭증현상이 빚어졌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그동안 집을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4.9% 증가해 부채 증가율 6%에 크게 못미쳤다. 부채 증가속도가 소득 증가속도를 앞지르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을 부채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모양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활성화 대책과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대책이 상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로 본다"며 "그동안 정부가 가계부채를 명목 GDP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려 해왔지만 갑자기 다시 높아져 우려가 많이 된다"고 지적했다.






▶ 귀닫은 정부와 당국‥`뒷북대응`, `병주고 약준다` 지적도






그동안 학계와 연구기관들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문제를 수차례 지적해 왔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조차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가계 부채가 한계 상황에 와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보다 빠른데다 질적 측면에서도 악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반응은 달랐다. 지난해 국회 가계부채청문회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규모나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으로 볼 때 위기상황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채폭증을 방관해 온 당국은 이제서야 심각성을 깨닫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가 25일 야심차게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2017년까지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160% 후반대인 지금보다 5%포인트 더 낮춰 160% 초반대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년간 부채가 거의 늘지 않아야 해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정부로서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닐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문제는 이같은 위기를 촉발한 장본인이 바로 정부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4.1 부동산대책을 비롯해 7.24후속대책, 8.28전월세대책, 12.3 후속대책 등 네차례나 주택대책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취득세 감면혜택 종료나 생애최초주택구입자 세제혜택 종료 등 수혜가 끝나는 시점마다 대출이 대거 폭증하는 부작용이 초래됐다. 정부 관계부처간 상충되는 두개의 정책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시장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LTV·DTI 잘못 손대면 재앙`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합리화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부담이 이미 과도한 상황에서 전세가격마저 폭등해 가계의 신용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자칫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 가계의 자금줄을 틀어막게 될 경우 비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풍선효과와 더불어, 소비에 제약을 가져와 내수시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반대로 규제가 완화될 경우에는 부채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꼴이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가계부채 문제 해소의 관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경우 DTI와 LTV문제가 사그라들고 자연히 가계소득이 물가상승률이나 부채증가율을 웃돌면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LTV와 DTI를 조정하는 데는 반드시 세밀한 분석과 타깃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목표는 좋지만 실행단계에서 세부적으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며 "대출자 중에는 현재는 무리가 가도 2~3년 후에는 갚을 수 있는 가계도 있고 아무리 해도 안되는 가계도 있다. 개별 가계의 의지라든지 상황을 봐서 세부적으로 접근할 때 피해가 적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거시적으로는 부채를 줄여나가도록 하고 미시적으로는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에게는 대출을 해주는 세분화된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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