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출간··최장집 교수 서문, 박상훈 박사 번역

입력 2014-04-30 15:01  

최장집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쓰고, 박상훈 박사가 번역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출간됐습니다.

지난 1513년 집필된 `군주론`은 단테의 신곡을 제치고 가장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의 고전이자, 국내에만도 이미 약 27종이 번역출판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는 것은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 따라 새롭게 조명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새로운 점은 무엇인가.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은 당면한 한국 민주주의에서 제기되는 문제, 즉 현실에 고전이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는가, 현대 민주주의의 실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거듭해 온 ‘민주화 이후의 정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정치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새롭게 번역됐습니다.

이 책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이은 두 번째, 탐구의 결과물입니다.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최장집 교수는 정치철학적 맥락에서 `군주론`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①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를 단순하고 편협한 현실주의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왜 정치에서 현실주의가 심오한 가치를 갖는지를 말한다는 점, ② 민주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에 주목하고 그 사상의 민중적 기초를 강조하는 학계의 최신 주장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박상훈 박사가 번역한 “2부 텍스트 읽기: 군주론”은 학문적 세계 밖에 있는 보통 사람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가능한 한 분명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었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 두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적 배경과 인물, 중요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달았습니다.

기존 해석들은 (행운 운명 기회 환경과 같은 객관적 상황 내지 제약을 의미하는) 포르투나와 (용기 대담성 결단력 위용 의지 리더십 교활함과 같은 지도자의 덕목 내지는 주체적 역량, 능력을 뜻하는) 비르투에 주목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그와 더불어,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네체시타와 프루덴차라는 개념을 조명함으로써 마키아벨리의 정치관을 좀 더 넓고 풍부하게 볼 수 있게 했다는 것도 새로운 점입니다(네체시타는 전환기에 필요한 특정 행위 또는 결단에 대한 요구 및 불가피성을 의미하며, 프루덴차는 실제의 정치에 실효적인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실천적 인식능력 내지 이성과 지식을 포함해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현명함 등의 여러 요소를 행동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밖에도 `군주론`에서 ‘두려움’(temere, paura), ‘명성’(reputazione), ‘경건한 잔인함’(pietosa crudelta) 등의 개념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 해석하기 어려운 사상가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잘 알려져 있듯이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사상가이자 논쟁적인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대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가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릴 수 없다.”고 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는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a teacher of evil)로,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살인적인 마키아벨리’(murderous Machiavelli)로 불렀다. 반면, 스피노자와 루소는 그를 공화주의의 대변자이자 자유의 옹호자로 평가했다.

현대에 와서 대표적인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인 케임브리지학파(퀜틴 스키너, 존 포칵, 필립 페팃 등)는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권력 게임이나 자기 이익의 추구로 본 것이 아니라, 시민적 덕을 중심 가치로 삼아 정치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는 전통적 공화주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최근에는 존 맥코믹 등의 학자들이 이를 비판하면서, 민주적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논쟁을 제기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언어와 수사가 양면적이고, 나아가 자신이 말하려는 것을 의도적으로 숨기면서 정반대되는 것을 동시에 말하기 때문에 다성적(多聲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소개했다. 마키아벨리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의 여러 목소리 속에서 최장집 교수가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적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2. 민주적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이 번역본 서문은, 마키아벨리 해석에 있어 정통 이론으로 자리 잡은 공화주의적 관점에 도전하면서 학문적 논쟁을 확대하고 있는 존 맥코믹 등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맥코믹은 케임브리지학파가 마키아벨리를 귀족주의적 공화주의자로 잘못 해석했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마키아벨리 이론에 내장되어 있는 것은 귀족과 상층 부유층 중심의 공화주의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된 민주적 공화주의였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리하여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을 현대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천에 훨씬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군주론`의 어떤 부분일까. 마키아벨리는 모든 도시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기질, 민중과 귀족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민중의 경우 귀족으로부터 명령과 억압을 받지 않기를 원하고, 귀족의 경우는 민중에게 명령과 억압을 부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수를 권력 자원으로 하고 다수 인구를 점하는 민중의 정치 참여,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은 정치적 역동성의 중심적 동력이 된다. 이때 군주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보다는 민중과 더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귀족에 비해 민중은 다수이기에, 군주가 민중을 적대적으로 만들 경우 권력을 상실할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통치자가 귀족과 적대하게 되더라도 민중과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면, 민중과 적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장집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의 진의는 군주의 권력 강화와 민중의 권력 강화가 양립 가능할 수 있는 접점이 존재하고, 통치자와 민중 간의 공존이 가능한 권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말한다. 외세에 대응하여 민중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20장은, 왜 군주의 정치적 기반을 민중에 두는 것이 필요한가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최선의 요새는 민중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며”, “민중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어떠한 요새도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한다.”는 점을 군주에게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3.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자, 현실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

기독교 교리가 “태양과 별의 진로를 규율할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적절한 행동 윤리를 지시하는 단일한 원리”였던 시절, 마키아벨리는 기독교 윤리가 아닌 것에 기초를 두고, 인간의 실제 행위에 부합하는 윤리이자 현실의 정치 영역에서 효능을 가질 수 있는 윤리를 찾으려 했다. 이를 통해 마키아벨리는 도덕 영역과 구분되는 정치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정치 행위에 개입된 다른 여러 요소들은 배제하고, 그것의 어두운 측면을 포함해 권력의지와 권력을 본질로 하는 정치 자체를 가감 없이 사실대로 보고자 했던 가장 정직한 정치철학자이자 이론가이다. 홉스가 기독교의 가정과 정신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키아벨리는 그보다 더 근대적이고 더 급진적이며 더 혁명적인 사상가였다.

현실주의는 인간의 정치 행위가 두 개의 상충하는 요소로 구성된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하나는 한 사회가 공공선의 추구나 공적 질서의 창출과 같은, 공적 문제를 위한 집합적 결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추구와 타자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그로 인한 권력투쟁은 제어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철학자들은 정치를 이상적이고 도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이 양자 간의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치를 도덕적 규범이나, 종교의 세속적 실천의 규칙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더 멀어지고 정치의 타락은 더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키아벨리가 보았던 것은 이 패러독스이다. 즉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에 매달려 실제로 행해지는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파멸로 이끌리기 쉽다.”(15장)는 것이다.

4. `군주론`이 한국 정치에 갖는 함의

`군주론`이 한국 정치에 갖는 함의에 대해서는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힌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오늘의 한국 현실과 관련해 볼 때, 현실주의가 약한 것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모두는 겉으로 좋은 것만 말하고 속으로는 거짓말하는 ‘숨은 마키아벨리’일지 모른다. 현실주의가 약해질 때 도덕적인 것도 타락한다. 정치 담론이 이상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권력론적이고 수사적일 뿐이다. 도덕 담론을 이원론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상적인 규범과 현실 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88쪽).

5. `군주론`의 중요 개념: 포르투나, 비르투, 네체시타, 푸르덴차

운명의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인간의 일 가운데 절반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운명의 여신이 역경과 고난을 가져다주었다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와 비르투로써 대응할 수 있다. 운명이 가진 파괴적인 힘은 준비가 허술한 약한 고리를 공격해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려 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그와 맞설 준비와 실력을 갖춘 사람을 피한다. 비르투는 시대와 상황이 요청하는 불가피성(네체시타)에 맞게 행사해야 한다. 평화 시기에 맞는 방책과 전환기에 필요한 방책은 다르다. 상황이 무엇을 요청하는지, 그에 따라 어떤 방책이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실천적 이성(푸르덴차)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에게 부여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업’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지도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진다. 기회는 비르투를 갖춘 지도자에게 운명의 여신이 주는 선물이다. 그 기회를 잡아 적극적으로 나설 때, 지도자는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명성을 쌓을 수 있으며 위대함을 실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공동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지은이|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

146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난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며 “즐거움 이전에 참는 것을 먼저 배워야 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1501년 마리에타 코르시니와 결혼했고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던 그는, 자신의 영혼보다 피렌체를 더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29세에 공직을 시작해 14년간 피렌체의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 역할을 맡으면서, “발렌티노 공의 비텔로초 처형에 관하여”, “독일에 관한 보고서”, “프랑스에 대한 고찰” 등 수많은 정세 보고서를 남겼다. 1512년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의 통치가 복원되자마자 현실 정치에서 배제되었는데, 그 후로는 저술 작업에 집중해 `군주론`,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관한 강론`, `전술론`, `피렌체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정치 이론과 역사, 전쟁 분야만이 아니라 희곡과 시, 산문 등에서도 대단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에 기초를 두고 근대국가로의 전환기에 대응하는 정치철학을 개척했다. 하지만 세간에 인상적인 충격을 주고자 했던 그의 표현 방식 때문에 자주 사악한 정치론의 주창자로 비난받기도 했다. 저술 작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치 일선에 돌아가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공직 진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그러다 1527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한국어판 서문|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분교, 코넬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객원교수 및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한국 현대 정치의 구조와 변화`,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민주화`, `민중에서 시민으로`, `어떤 민주주의인가`(공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박상훈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한국 지역 정당 체제의 합리적 기초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정치의 발견`, `민주주의의 재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공저),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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