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990년, 2014년...그리고 한국

최진욱 부장 (부국장)

입력 2014-07-14 19:25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독일의 우승과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1954년과 74년, 1990년 세 차례 우승컵을 안았지만 당시에는 `서독`이었다.

1990년 10월3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독일은 꿈에 그리던(?) 통일을 달성했다. 하지만 축구는 내리막 길을 걸었다. 차범근 해설위원이 현역선수일 당시 `분데스리가(Bundes Liga)`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리그였지만 통일을 기점으로 독일 축구는 유럽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났다.

24년만에 우승컵을 되찾은 독일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이미 1960년대 말부터 통일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20여년만에 결실을 거뒀다. `라인강의 기적` 을 통해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나의 독일(Einheit;통일)이 추진된 것이다.

우파인 기민당(CDU) 당수였던 헬무트 콜 수상은 하지만 통일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통일은 곧 자신과 여당의 지지기반을 흔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콜은 하지만 `총리직`과 `여당`이라는 미련을 내려놓고 `통일`을 선택했다.

통일의 환희가 사라지자 나라는 동서로 나뉘어 끊임없이 갈등했다. 1991년부터 당시 서독은 동독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매년 12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예산(25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자)을 퍼부었다.

하지만 두 체제로 갈라졌던 독일의 진정한 통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늘어나는 세금과 실업률, 경기불황에 `서독인(Wessi)`의 불만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 몸에 익은 비효율에 대한 향수로 `동독인(Ossi)`들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1998년 정권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SPD)으로 넘어갔다. 통일을 밀어붙였던 콜의 결단은 결국 자신과 당에는 부메랑이 되었다. 큰 정부와 노동자 중심의 좌파정당인 사민당은 기민당 보다 더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며 독일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슈뢰더 총리는 `2010 어젠다`라는 개혁정책을 2000년 발표하고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사회보장지원 삭감을 슬로건으로 통일 이후에 누적된 `독일병`을 해소하기 위해 칼을 빼든다. 고통스러운 개혁으로 결국 민심이 떠났고, 2005년 총선 패배와 함께 현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다시 집권한다.

(연도별 독일 GDP동향, 자료: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세계은행)

유로화와 유럽중앙은행(ECB) 출범, IT버블이 터지면서 발생된 경기둔화로 독일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에 이른다. 슈뢰더 총리는 사면초가에 몰렸지만 개혁을 밀어붙인다. 그의 결정은 본인과 사민당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지만 독일 경제는 그가 물러난 이후에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당시 슈뢰더의 개혁이 없었더라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해체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독일이 유럽의 경제기관차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2012년 한국경제TV가 주최한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GFC) 주제 연설에 나섰던 슈뢰더 전 총리는 당시 독일 국민 전체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개혁이었지만 독일의 장래를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현 수상인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결단으로 이뤄진 개혁의 과실을 누리고 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이처럼 통일 전후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의 와중에 독일은 한걸음씩 유럽의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재미있는 점은 독일 경제와 함께 분데스리가도 활기를 찾으며 독일 축구도 다시 유럽의 중심에 우뚝섰다는 점이다. 독일 축구는 인종과 종교, 지역을 초월해 전 세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이 이뤄진 것은 물론이다. 월드컵 우승은 그 결과일 뿐이다.

(독일 DAX지수, 자료:트레이딩 이코노믹스)

뉴욕증시의 사상 최고치 경신이 이어지고 있지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지수의 움직임은 주목할만 하다. 통일 직후 미국의 IT버블이 터지기 직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인 8,000을 뛰어넘고 지난달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지수 10,000을 돌파했다.

보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른 평가도 가능하지만 현재 DAX지수가 독일의 경제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통스러운 두 번의 위기를 넘고 20여년만에 꽃을 피운 독일 경제지표와 주가지수, 월드컵 우승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사진 : 독일 ZDF 홈페이지 캡처)

정권과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데만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고려하면 콜과 슈뢰더의 위대한 결단이 오늘과 같은 승리를 자축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만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여당의 전당대회, 보름 앞으로 다가온 재보궐선거, 2기 경제팀의 출범을 앞두고 2002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98년 월드컵 당시로 되돌아간 것 같은 한국 축가대표팀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독일의 공영방송 ZDF는 13일(현지시간) 자국의 월드컵 우승을 이런 헤드라인으로 시작했다. "Deutschland ist Weltmeister!"("독일이 세계 챔피언이다!")
`통일은 대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일이 보여준 만큼 우리도 `한국이 세계 최고다!`를 외칠 수 있는 그 날을 기약해본다. 축구도, 경제도...위대한 결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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