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미생’ 중동(中東)이라는 말 써야 하나요?

입력 2014-11-17 12:07   수정 2014-11-17 19:55

▲ 드라마 ‘미생’에서 사용된 ‘중동’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자료사진 = tvN)


tvN 드라마 ‘미생’ 8회에서 영업3팀 오상식 과장(이성민)은 부장에게서 중동 메카폰 사업을 성사시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업의 성사를 위해서는 중동 유통계의 큰 손이라는 문충기 대표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이에 필요한 문 대표의 2차 접대요구 등이 오 과장을 괴롭혔다.

그러나 중동사업 성사를 위해 오 과장은 고군분투하면서 유머러스하고 통쾌한 결말을 이끌어낸다. 9회에서는 중동 프로젝트를 위해 박 과장(김희원)이 영업3팀이 합류하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동사업의 신화로 불린 박 과장은 중고차 사업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고, 이에 맞선 영업3팀의 용단과 협력이 힘을 발휘한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이렇게 중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에게 중동이라는 개념은 산업역군들의 이미지가 강하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이겨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업의 성취를 이뤄내던 곳이기 때문에 중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어쩌면 미생에서 이 지역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다만, ‘중동’이라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지만 이 말이 잘못된 단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이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중동(Middle East)은 동지중해에서 페르시아만까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집트에서부터 아라비아 반도 및 이란 등이 포함된다.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0년 초다. 유럽이 ‘Orient(동양)’를 규정하면서 ‘Middle East’라는 말이 확립돼버렸다. 즉 유럽의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Near East(근동)’, Middle East(중동), ‘Far East(극동)’ 같은 단어로 분류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중동은 오히려 서쪽에 있는 지역이다. 그럼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까. 서남아시아는 어떨까. 물론 이는 서구의 관점은 아니지만 그곳에 사는 그들의 관점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중동과 비슷한 말로 ‘아랍’이 있는데, 이 지역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는 지역을 말한다. 이들 지역의 나라들은 대개 아랍국가들의 연합체인 아랍연맹에 가입돼있다.

여기에 가입한 나라에는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예멘, 알제리, 수단, 모리타니, 소말리아, 지부티, 코모로 등이 있다. 스스로 이들의 자신의 지역을 중동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 지역을 중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리의 관점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미생’에서 중동 프로젝트 중고차 사업의 대상지인 요르단은 바로 아랍연맹에 속해 있고, 중동이 아닌 아랍지역으로 지칭하는 것이 더 맞을 듯싶다. 우리일상에서 많이 쓰기 때문에 특별히 ‘미생’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방송의 영향력과 이 프로그램의 폭발적인 인기를 생각할 때, 중동 메카폰 사업은 아랍 메카폰 사업으로, 중동 프로젝트는 아랍 프로젝트가 적절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 관점이라면 중동대신 서남아시아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서남아시아도 우리의 관점일 뿐이니 그들의 관점에서 아랍지역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디 ‘미생’만의 문제일까. 이런 지명 포기에 대한 혼란은 중동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中國)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하지만 이도 적절한 단어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관점이기보다는 한족(漢族)을 우월하게 여기는 사대주의 관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화민국(中華民國)은 화국(華國)이 맞다. 화족(한족)이 중심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55개 민족은 소수민족에 불과하다. 중화민국이 중국이 되는 표기방식대로라면, 대한민국(大韓民國)은 한국(韓國)이 아니라 대국(大國)이 되어야 한다. 중국은 센트럴 네이션(Central nation)이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세계인들은 그들을 차이나(China)라고 한다. 한자어로는 지나(支那)이다. 진시황제의 정체성을 계승한 통합적 관점이 이 지나에 담겨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남아시아도 그렇다. 세계적으로 그들 지역을 인도차이나(Indochina)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자 표기는 인도지나(印度支那)이다. 세계적으로 중국은 지나, 나아가 차이나가 맞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고 비난할 수 있다. 반드시 맞는 정확한 개념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 적어도 그들 지역이 스스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규정되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며 좀 더 좋은 관계를 낳는다. 이는 단지 문화 호혜의 관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 결과물을 내야 하는 기업에서는 더욱 이런 원리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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