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인터뷰] 추민주 연출 "뮤지컬 '빨래'...토닥여주고 싶은 이야기"

입력 2014-11-17 17:46   수정 2014-11-17 17:46



지금 20대는 ‘88만 원 세대’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간다. ‘88만 원 세대’란 비정규직이 만연한 한국을 풍자하는 말이다. 사회는 좋은 학벌에 탄탄한 스펙을 원하지만,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대가를 지불한다. 젊은 청년들은 누구보다 바쁘게 산다. 900점에 가까운 숫자를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마음에도 없는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청춘을 담보로 쌓은 스펙이지만 그들이 꿈꾸던 직장은 많지 않다. 청년들은 무급인턴부터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이상을 쫓는다. 뮤지컬 ‘빨래’는 돈에 허덕이는 ‘20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 속 ‘나영’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내가, 당신이 떠오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은 뮤지컬 ‘빨래’가 창작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을 거둔 원동력이다.

뮤지컬 ‘빨래’는 2005년 초연 이후 약 2,000회에 걸쳐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작품은 그간 33만 명의 관객과 만나며 대학로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빨래’는 타지에서 올라와 홀로 서울에서 살아가는 ‘나영’을 중심으로 한다. ‘나영’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산동네에 정착한다. ‘나영’이 사는 산동네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자식처럼 ‘나영’을 챙겨주는 사연 많은 ‘주인 할머니’부터 속정 많은 ‘희정 엄마’까지 ‘나영’은 사람 냄새나는 동네가 점점 좋아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영’은 서점에서 부당해고 당한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잔뜩 마신 ‘나영’은 외국인 노동자 ‘슬롱고’와 마주치고 두 사람은 그날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뮤지컬 ‘빨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영’부터 집주인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까지 한 명은 만났을 법한 인물들이다. 관객들은 처음엔 ‘나영’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상하게도 극이 흘러갈수록 ‘주인집 할머니’가 ‘희정 엄마’가, 해고당한 ‘여직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뮤지컬 ‘빨래’의 추민주 연출가는 이점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라 말한다.

“극 초반엔 시선이 ‘나영’에게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친근한 ‘나영’이 관객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다. 뮤지컬 ‘빨래’의 매력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마음과 눈이 향하는 캐릭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배경이 서점으로 옮겨갔을 땐 서점에 일하고 있는 남자 직원의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 ‘나영’의 동네에서는 장애인 딸을 둔 ‘주인집 할머니’가, 마을 어귀에서는 ‘솔롱고’가 천천히 스며든다.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마음에 들어오는 캐릭터가 계속 바뀐다. 결국, 모든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중심이다. 등장인물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 이를 관객이 깨닫는 순간 뮤지컬 ‘빨래’에 풍덩 빠지게 된다.”

이토록 눈부신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평범함’이다. 사람들은 비범한 무언가를 좋아한다. 눈에 익은 것에서는 특별함을 찾을 수 없다. 뮤지컬 ‘빨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실 ‘평범’보단 ‘궁상’에 가깝다. 어떤 일이든 가장 무난하게 마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에게 있어 평범한 캐릭터는 그 어떤 비상한 캐릭터보다 어렵다.

“배우들이 많은 부담을 느낀다. 작품 속 캐릭터들이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소화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끌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평범한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보이려면 배우가 인물과 하나 되는 수밖에 없다. 먼저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의 느낌을 알아야 캐릭터를 살릴 수 있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캐릭터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 작품 속 캐릭터와 비슷한 현실 속 인물과 인터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배우가 맞는 옷을 입더라. 그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나영’이와 ‘솔롱고’로 남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추민주 연출가는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한다. 많은 배우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김대현 배우가 실수한 적이 있다. 김대현 배우는 ‘솔롱고’ 역을 맡아 뮤지컬 ‘빨래’ 무대에 올랐었다. 연습하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 이외에도 다른 인물을 돌아보는 작업을 쭉 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가끔 인물을 헷갈리더라. 김대현 배우의 대사 중에서 ‘내이름은 솔롱고입니다’라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나영’에게 반한 ‘솔롱고’가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연습 중에 김대현 배우가 ‘내 이름은 마이클입니다’라고 실수를 했다. 연습하던 스태프들이 다 빵 터졌다. 정말 재밌었다. 재밌는 에피소드 말고도 감동적인 일이 더 많다. 함께하는 배우 모두가 ‘솔롱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솔롱고’의 몽골 가족으로 살기도 했다. 어떤 때는 병원에서 다친 ‘마이클’을 바라보기도 한다. 연습 당시 느꼈던 벅찬 마음이 아직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을 쏟아 부은 연습 끝에 뮤지컬 ‘빨래’는 무대에 올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세상에 나온 뮤지컬 ‘빨래’는 2003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창작 뮤지컬이 오랜 시간 사랑을 받기란 어렵다. 뮤지컬 ‘빨래’는 창작 뮤지컬의 희망이자 새로운 도약이다. 작품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가벼운 여운 끝에 감도는 묵직한 무게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추민주 연출가는 뮤지컬 ‘빨래’에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풀리지 못한 억울함이 많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에는 공정하지 못한 무언가가 너무도 많다. 개인이 당한 억울함을 보상받기에 사회는 냉정하다.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도 힘이 된다. 억울함이 해소되지는 않아도 소리칠 힘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빨래’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자 만든 작품이다. 절실한 마음으로 만들다 보니 관객들도 진심을 알아준 것 같다.”

뮤지컬 ‘빨래’는 캐릭터만큼이나 무대도 친근하다. 동네에 하나쯤은 자리 잡고 있는 구멍가게부터 빨래가 널려있는 옥상까지 무대 곳곳에는 생활이 묻어난다. ‘평범한 인물’과 ‘평범한 소품’들이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뮤지컬 ‘빨래’를 스테디셀러로 만든 장본인이다.

“무대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무대 위 인물들의 생활이 곳곳에 묻어있길 바랐다. 무대에 인물들의 생활상을 담으니 저절로 정감 있는 세트가 완성됐다. 무대를 완성하고 굉장히 뿌듯해 했다. 소극장에 딱 맞는 세트다. 무대에는 눈에 띄지 않는 몇 가지 장치가 숨어있다. 뮤지컬 ‘빨래’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은 아마 눈치챘을 거다. 옥상은 ‘나영’이 빨래를 널며 쉬는 공간이자 ‘솔롱고’와 만나는 장소다. 옥상에는 항상 미세한 바람이 불도록 연출했다. 공연 중 옥상 장면을 자세히 보면 ‘나영’의 머리카락과 빨랫줄에 널린 손수건이 조금씩 움직인다. 옥상이 가지는 특별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른 소품들도 마찬가지다. ‘국제슈퍼’ 앞에 있는 냉장고나 테이블은 ‘슈퍼 아저씨’의 느낌과 맞닿아 있다. 동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재개발 지역에서 공수해온 소품도 있다. 소품이 캐릭터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무대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은 ‘공간의 한계’다. 제약된 공간은 극이 주는 상상력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더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추민주 연출가 역시 뮤지컬 ‘빨래’의 무대를 만들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녀는 ‘나영’만의 좁은 공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영’이나 ‘주인 할머니’가 사는 방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작은 방을 표현할까 고민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이 있다. 넓은 집에는 큰 문이 달려있고 좁은 집에는 작은 문이 달려있다. 집의 크기에 따라 문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문을 이용해 반지하의 집이나 작은 방을 표현하고 싶었다. 뮤지컬 ‘빨래’ 속에는 넉넉하게 살아가는 인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세트에 있는 문들은 다 작다.”

추민주 연출가의 소품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뮤지컬 ‘빨래’에 사용된 작은 소품에도 저마다 의미가 있다. 작품은 ‘빨래’로 시작해 ‘빨래’로 마무리된다. 극 중 ‘나영’은 ‘빨래’로 기분을 전환한다. 고향이 그리울 때도, 억울할 때도 ‘나영’은 빨래더미를 들고 옥상에 오른다.

“작품에서 ‘빨래’는 주제를 담고 있는 핵심이다. ‘나영’은 빨래를 통해서 억울함을 달랜다.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 역시 빨래를 통해 희석한다. 빨래가 ‘나영’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다. 빨래는 관계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빨래를 통해 ‘나영’과 ‘솔롱고’가 가까워지고 ‘주인집 할머니’와 ‘희정 엄마’는 빨래를 통해 정을 나눈다. 빨래와 관련된 소품에도 의미가 있다. 극 중에서 사용하는 ‘빨간 대야’에도 의미를 담았다. 요즘에는 빨간 대야를 찾기 힘들다. 작품 안에서 빨간 대야는 없으면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다. 빨간 대야에 여성의 삶을 담고 싶었다. 빨간 대야를 여성의 자궁이라고 생각하고 연출했다. 소품에 의미를 많이 담다보니 관객들도 한 번만 공연을 보지 않더라. 몇 번이고 다시 뮤지컬 ‘빨래’를 찾는 분이 많다. 연출의 의도를 알아주는 관객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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