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은행권의 주기도문‥"제발 다른은행 건이 터지기를"

김정필 부장

입력 2015-11-19 00:00   수정 2015-11-19 08:10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KB사태나 신한사태 같은 대형 건이 현 시점에서 다른 은행에서 터지게 하여주시고, 저희 은행에서 터진다면 다른 건으로 묻히도록 하옵시며,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까지 있는 주기도문과도 흡사한 이 문구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문구지만, 실제 은행권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일상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최근 산업은행의 한 중견간부는 기자와 만나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부실 관리감독, 특혜, 부조리, 낙하산 병폐 등 연일 뭇매를 맞고 그 뒷 처리에 따른 힘겨운 상황을 토로했습니다..

이 간부는 “악재에 대응하느라 숨 돌릴 틈도 없다”며 “KB사태 같은 대형 건이 터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매일같이 기도한다”며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의 하소연을 털어놓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산업은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낙하산 CEO, 부실 투자, 건전성 악화, 황제 호화출장 논란 등 바람 잘 날 없는 수출입은행 관계자들 역시 관련 이슈를 몸으로 막느라 만날 때면 한 숨부터 내쉬는 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여느 대기업군, 시중은행, 금융지주와 달리 국책은행의 5~6명의 한정된 인력으로 폭풍과도 같은 악재를 막으려니 더욱 이 같은 기도와 바람이 간절한 모양입니다.

지난해 모든 경제지와 일간지 첫 면을 도배했던 KB금융, 불법 계좌조회·경남기업 로비논란의 중심에 섰던 신한금융 이슈가 몰아치던 당시 “요즘 같아서는 타사에서 한 건 터져 줬으면”이라는 넋두리를 해당 금융사 관계자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것도 비근한 예입니다.

고객 정보유출로 한 고비를 넘겼던 농협도 최근 특혜 대출, 횡령, 비자금, 단위조합 문제, 금품수수, 차명계좌 등 악재가 봇물 터지며 주기도문을 넘어 이제는 금식기도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한 국책은행 부행장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자책과 함께 깊은 아쉬움을 나타냅니다.

*은행권 "산업지원·경제 견인차 자부심 옛 이야기"
이 부행장은 “그래도 국책은행 하면 경제부흥을 위해 나름 엘리트들이 모여 한정된 자본을 성장 산업이나 SOC 등에 우선 배분도 하고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임직원 모두에게 있었는 데 다 옛 이야기”라며 현 상황에 대해 탄식했습니다.

이어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 지”라며 말끝 조차 맺지 못했습니다.

막다른 상황에서 ‘어떨 때는 다른 은행, 금융지주에서 사고가 터져 주길 바란다’는 어찌보면 말 뿐인 죽는 시늉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업자 정신은 온데 간데 없어 보이기 조차 합니다.

은행권의 각종 사태, 사건 사고, 대형 이슈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잊혀 질 듯 하면 불거지고 되레 업권에서 타사의 불행을 갈망하는 이 같은 상황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일까요.



금융지주사 소속의 한 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돌아가면서 한 건씩 터뜨리기로 서로 약속이라도 했는 지 매번 이렇게 각종 사고와 부실이 되도록 금융사 자체 시스템은 어찌된 것이고 금융·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금융사고·은행권 때리기 고착화‥본연의 업무 `궤도 이탈`
이 연구소장은 “금융사고의 반복, 정부·당국의 역학구도상 필요에 따른 ‘은행권 때리기’와 같은 이미지·분위기가 고착화되면서 본연의 업무, 궤도를 벗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청년희망펀드 등 기부를 해도, 회장단·임원들이 연봉을 반납을 해도, 고용창출에 이바지 해도, 활발한 영업활동과 비은행부문의 강화를 통해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대에 달하는 이익을 내도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뭔가 있으니 기부했겠지’ ‘과도한 고액연봉 받으니 좀 뱉어 냈겠지’ ‘이자놀이해서 쉽게 이익 내니 수 조원대 수익 내겠지’ 등 곱지않은 시선이 베이스에 깔리며 기본 취지가 자연스럽게 묻히고 왜곡되는 현상이 고착화됐다는 것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 경계해야 할 문화 뿌리내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이 기반을 상실하고 정부와 당국은 이를 근거로 인사청탁·개입·외압을 당연시하고, 이를 수습하고 봉합하면 또 다른 사건이 반복되면서 동반자정신은 사라지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형태의, 경계해야 될 문화가 어느 순간 자리를 잡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금융공학 분야의 한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사회 전체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은행과 금융지주 등 금융권에 한정한다면 금융사를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몰고 필요한 때는 어떻게든 동원하는 형식이 반복되는 하나의 오류”라고 진단하며 “은행권도 억울하기는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단 은행권과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권과 당국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조적 특수성과 일부 임직원의 모럴 헤저드 등이 긴 시간동안 복잡하게 얽히며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금융권 출신 재계의 한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은행에 대해 관료·정치권에서는 콘트롤이 가능한 몇 안되는 부문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며 “우리(당국)가 진입장벽 쳐주는 데, IMF때 살려줬는 데 라는 굴레를 씌워 놓고 감독과 규제를 하는 대상이다 보니 대기업·재계와 달리 CEO선임 개입, 인사 청탁, 정책 동원 등 은행권은 이 같은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정치권·당국 은행권 인사개입·청탁 각종 사고의 근원
CEO, 임원 선임에 깊이 개입하고 연임이나 유임이냐, 공신을 끼워 넣느냐 마느냐의 문제, 일각에서는 낙하산 관행이 신뢰가 근간이 돼야 하는 은행권 내부를 사고와 사건, 부조리로 병들게 근본 요인임에도 모든 것을 은행이 책임지고 동원되는 속칭 ‘동네북’이 됐다고 진단합니다.

정치권과 당국은 여론을 활용해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은행에 지우고 내부통제 강화나, 중징계 등 통해 해당 사안을 일갈하지만 이권이 걸린 민원 등이 있을 때나 정책관련 지원이 필요할 경우 은행들을 앞세우고 동원하는 손쉬운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내듭니다.



시중은행 CEO를 역임한 바 있는 한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엄격한 감독과 규제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경영 개입, 한번 선임된 CEO의 오류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 부족, 수직관계가 강한 조직문화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은행권 때리기, 그 이후 제재나 징계, 사태 수습이 어려운 상황까지 몰아가는 양상은 언제나 있어 왔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학자들과 경제연구소 관계자들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은 은행에 부여된 특권을 남용하지 않고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적정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논의의 출발점이 정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은행이 영리기업인 동시에 태생적으로 공적기관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 또한 정치권과 당국의 입맛에 따라 역할이 좌우돼 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견해들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가장 위험한 발상중 하나가 은행권에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정치권과 당국, 은행 등 각 이해당사자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정치판 기웃거리는 은행 CEO·임원들 외압 `자충수`
문제는 아직도 정치권과 당국에서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은행을 동원한 각종 사회공헌, 포퓰리즘성 정책 동원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인사와 관련해 연임이냐 유임이냐, 새롭게 조직 내에 진입하느냐 등 정치권의 향방에 따른 자신들의 명운에 관심을 갖고 발로 뛰며 줄을 대는 거센 정치 바람에 몸을 싣는 은행권 인사들이 상당수라는 점입니다.

임기가 남아 있거나 다된 CEO를 포함해 임기 만료를 앞둔 부사장, 부행장, 계열사 사장 등 경영진 교체 등이 거론되면서 계좌이동제에 따른 고객유치, 신사업 확보, M&A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일신 만을 신경쓰며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외압, 낙하산, 인사 개입을 자초하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어렵지 않게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정치권과 당국도 이권과 민원·인사 청탁을 위해 이같은 흐름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벌써부터 정치권, 당국, 관료들과 네트워크가 두터운 누구 아무개와 CEO가 ‘호형호제’를 하고 소개를 받고 자리를 마련하는 등 움직임이 분주하다”며 “경영성과가 아닌 유력 인사의 힘을 빌어 본인의 명운을 맡기려는 행보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유지하고 자기사람들로 채우고, 자신을 밀어준 보은인사 청탁을 들어주고 하다보니 금융사고, 사건, 비리 등이 발생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고 임기중이나 임기가 끝난 후 사고가 나면 임직원들은 또 다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실무선에서는 다시금 “`다른 금융사에서 터지면 좋겠다‘ ’우리 회사에서 터지더라도 다른 대형사건에 묻히면 좋겠다`”등의 주기도문을 반복해 읊조리는 고질병이 되는 셈입니다.



인사철, 자리 만들기, 공신 챙기기, 이 같은 문화에 기대어 CEO자리, 부행장, 계열사 사장, 사외이사, 고문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은행권을 때리는 정치권과 당국, 각종 정책에 자의는 없이 타의만 존재하는 은행 구성원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는 셈입니다.

금융 개혁에 대한 드라이브가 한창인 가운데 향후 경제전망은 리스크 요인이 산재한 상황에서 지급결제, 자금중개, 공적 역할 등 본연의 업무만 하기에도 녹록치 않은 환경입니다.

*악재 산적·경영계획 수립 어려움‥ 은행권 `냉가슴`
당국과 정치권,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CEO들이 중장기 전략은 고사하고 은행이나 금융지주들은 당장 내년 경영계획 조차 수립하는 것이 쉽지 않아 한숨만 내쉬게 하는 이상한 상황으로 몰고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타사의 아픔을 갈망하는, 은행권이 외압에 휘둘리는 자충수 격인 정치판 기웃거리기 풍토, 정치권과 당국의 필요에 따른 은행 때리기와 동원이 이어진다면 늘상 목소리 높이는 글로벌 은행, 금융권의 ‘삼성’과 ‘현대차’는 어찌 보면 공허한 메아리, 신기루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은행권은 탐욕과 사고로 점철된 조직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일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입김이 은행·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자체를 흔들지 않도록 하여주시고 은행이 각종 정책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은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옵시며”

“예대마진·땅짚고 헤엄치는 이자 놀이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 신성장동력 확보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도록 해 주옵시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업권 자생적으로 시장논리에 근간한 공적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옵시고..(중략)“

타사의 아픔을 드러내 본인들이 몸담는 은행의 치부를 덮도록 해달라는 주기도문 대신 이 같은 금융환경 개선, 금융 본연의 역할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기도문이 은행 관계자들의 입에서 읊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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