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국제유가는 산유국들이 동결 합의로 유가회복 기대감이 잠시 살아나는듯했습니다. 그런데 장중 재하락해 현지시간 1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마감한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전날보다 0.4달러 내린 배럴당 29.04달러로 마감했습니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도 1.21달러 내린 배럴당 32.18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국제유가 하락은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산유국들의 산유량 동결 조치에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원유 생산량을 올해 1월 수준에서 동결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사우디 석유장관은 유가가 안정되기를 바란다며 감산을 시사하는 발언도 내놨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 소속인 카타르, 베네수엘라도 이번 생산량 동결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국제유가 안정에 기대감이 살아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번 조치로 사우디, 러시아, 미국을 포함한 산유국들의 치킨게임, 원유 공급량이 더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습니다. 하지만 유가는 왜 하락세로 돌아섰을까요? 마켓워치가 온라인판에서 인용한 조쉬 마호니 IG 시장분석가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솔직히 감산이 이뤄질 수 없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분쟁을 볼 때 석유시장 점유율을 인정하는 건 정치적 자살을 의미한다. 오늘 국제 유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을 하자면 이번 유가 하락은 시장이 기대했던 `감산`이 아니라 `동결`됐기 때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명백히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맹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생산단가가 세계에서 최저 수준으로 저유가를 견뎌낼 여력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미국 셰일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감산에 계속 부정적이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사우디는 저유가로 인한 재정적자에 대비해 8년 만에 국채를 발행하고, 실탄 확보에 나설 정도인데요. 앞서 짚어드린대로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풀려난 뒤 증산 방침을 고수하는 정치적 라이벌, 이란과 경쟁에서도 우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에울로지오 델피노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이 오늘 이란, 이라크와 산유량 동결에 대해 논의할 전망이지만, 긍정적 답변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려우 보입니다. 당연히 이들 두 국가를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만 감산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또 시장이 주목한건 이번에 동결하기로 한 1월 수준의 생산량입니다.
산유국들이 동결하기로한 1월 하루 생산량을 종합하면 대략 3200만 배럴을 넘어 사상 최고 수준입니다. 저유가로 인해 셰일가스 업체들의 도산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1, 2위 산유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자료를 보면, 올해 미국내 원유 생산량은 하루 920만 배럴로 작년보다 소폭 줄어드는 데 그칠 전망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란은 이미 원유 수출을 재개한 상황이고, 6개월 안에 하루 생산량을 200만 배럴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산유국간의 치킨게임은 중단했지만,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겁니다.
오는 6월 석유수출국기구 OPEC 정례회의가 예정돼 있는데, 이번 동결 조치 후 석유수출국들이 감산에 합의할지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그럼 어떨까요? 여러차례 짚어드린대로 정유업체들은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석유제품의 수요는 늘고, 제품가격도 그대로다보니 수익성이 크게 늘어난 걸로 추정됩니다.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이익이 재작년 배럴당 4.1달러대에서 지난해 6.24달러로 올라섰고, 정유업체들의 작년 합산 영업이익은 5조 원에 달합니다.
반면 건설업체들은 저유가로 인한 산유국의 재정 악화로 수주량이 2/3로 줄고, 항공사들은 환율로 인해 오히려 손해를 봤습니다.
이번 산유국들의 생산량 동결조치에도 적어도 반년간은 뚜렷한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며 경제성장률, 물가 끌어올리기에 나섰지만 저유가라는 악몽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더구나 이번 합의는 잠정 합의입니다. 언제 또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란 겁니다. 석유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재정난에 허덕이는 러시아, 오랜 내전에 지친 이라크와 국제사회 재진입에 나선 이란까지. 이들을 둘러싼 역학관계, 지정학적인 갈등에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