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전공의 회식 중 술에 취해 엎드려 있는 여자 후배의 머리를 만졌다면 성추행에 해당할까.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20일 의정부지법에 따르면 2014년 4월 저녁 모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식당에서 회식하던 중 3년차 전공의 A(36)씨는 "얘는 왜 이렇게 취했냐"라고 말하며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2년차 여자 후배 B(26)씨의 머리를 지압하듯 양손으로 만졌다.
당시 B씨는 술을 더 마시지 않고자 취한 것처럼 엎드려 있었을 뿐 깨어있는 상태여서 A씨의 행동이 기분 나빴다.
그럼에도 B씨는 전공의 사이의 엄한 위계질서 탓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A씨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회식이 끝난 뒤 동료들과 택시를 타러 걸어가던 중 B씨를 뒤에서 껴안았으며 병원에 돌아와서도 한밤중에 여자 전공의 숙소에 들어가 B씨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제압하기도 했다.
참지 못한 B씨는 A씨를 신고했고 A씨는 강제추행과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8월 A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와 신상정보 등록을 명령했다.
그러나 A씨가 B씨의 머리를 만진 강제추행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식당에는 동료 여러 명이 함께 있었고 공개된 장소였던 점에 비춰보면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이에 검찰은 "무죄가 아니다"며, A씨는 "형이 무거워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달랐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성지호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원심을 깨고 머리를 만진 추행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하면서 벌금 300만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 명령, 신상정보 등록 등을 그대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추행에 해당하는지는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주위의 객관적인 상황,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피고인은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생각해 머리를 만졌고 이전에도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전력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추행이 맞고 추행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전공의 간의 위계질서를 악용해 후배 전공의를 성추행했고 한밤중에 여성 전공의 숙소에 침입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정신적 고통을 받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양형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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