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신이 버린 '신용10등급'…44만명 제도권서 퇴출 위기

이근형 기자

입력 2016-05-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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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 10등급 44만명, 제도권 금융 사실상 `이용불가` 상태
수익로 막힌 금융사들, 고신용자 모시기 전쟁









"신용 10등급은 이제 취급 안합니다"



국내 대부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러시앤캐시 관계자의 말이다. 요즘 러시앤캐시의 주요 타깃 고객층은 신용 7~9등급 고객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34.9%에서 27.9%로 낮아지면서 주요 타깃 고객층이 7~10등급에서 한 단계 앞으로 당겨졌다. 조정된 법정 최고금리가 신용 10등급의 대출손실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직장이 있거나, 보증인이 있는 경우, 또 전월세 담보대출인 경우에는 신용 10등급 대출자도 대출을 취급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승인이 나지 않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10등급 저신용자는 보통 `장기 연체`를 하거나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랐을 경우다. 전자든 후자든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국내 제도권 금융사 어디에서도 대출길이 막힌 것이다. 자연히 파산에 이르거나 불법 고금리 사금융의 늪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KCB(코리아크레딧뷰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신용 10등급자는 439,556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24,500명이 대출거래를, 332,700명이 카드거래를 하고 있어 부실이 우려된다.




하지만 당국은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신용거래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별 금융거래나 대부업체 거래자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그나마 유사한 자료가 있다면 연 1회 발행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는 한국은행 역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의 통계까지는 있어도 대부업체까지는 관리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밀착"하는 금융사들






문제는 대부업체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부터 대부업체까지 제도권 금융사들이 취급하는 고객이 점차 신용상위등급으로 당겨지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들 역시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면서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을 꺼리고 있다. 특히 당국이 올해 말까지 주요 저축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을 10% 아래로 낮추도록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상태여서 저축은행들은 연체율 관리에 더욱 예민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저신용자들 사이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묻지마 개인회생`은 저축은행들이 우량고객 확보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또한가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출모집인 브로커가 저신용자, 변호사와 손잡고 저축은행으로부터 최대 한도로 돈을 빌린 후 돌연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을 하는 경우다. 이 경우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떼인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대손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업계 자산순위 1위인 SBI저축은행의 경우 가계 부실채권의 70% 정도가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축은행들은 저신용자 대출의 높은 부실률을 이유로 25%에 달하는 고금리를 부과하고 있다.



금리수준이 대부업체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일자 저축은행들은 신용 1~6등급 고·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최저 6.9% 금리를 적용하는 중금리 대출을 판매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국내 저축은행 자산순위 1위와 2위인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은 올해 수익성 강화를 위한 주력 전략으로 모두 `중금리대출`을 꼽았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갈수록 마진을 남기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저마진으로 최대한 많은 우량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신용 상위등급 모시기에 주력하는 것은 시중은행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5일 발표한 `1분기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를 보면 1분기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태도지수는 주택대출이 `-19`, 가계일반이 `-9`로 대출심사가 깐깐해졌다. 그만큼 우량고객이 아니고서는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올 1분기 금융당국의 여신심사관리대책이 시행된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지난 2월말 저축은행과, 신협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252조8,561억원으로 두달만에 4조2,238억원이나 불어났다. 상황은 마치 모든 제도권 금융사들이 더 나은 신용자를 찾아 앞으로 밀착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진퇴양난`…도태되는 금융사들




금융사들의 고신용자 모시기 현상이 만연한 가운데 경쟁에서 밀려난 일부 중·소 금융업체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양상이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리스크리뷰에서 자산 1조원 이상 대형저축은행과 자산 5천억원 미만 소형저축은행 간 성장성과 수익성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순이자 마진은 대형저축은행 평균이 7.97%로 1년전보다 1.2%포인트 높아졌지만, 소형저축은행 평균은 4.46%로 1년전보다 0.71%포인트 오히려 낮아졌다. 저마진의 압박을 규모의 힘으로 견디는 대형 저축은행들과 달리 몸집이 작은 저축은행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어서다.




대부업체들의 양극화 역시 점차 심화되고 있다. 대부업협회 관계자는 "대부업계 전반이 현재 신규고객을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형 대부업체들은 그간 투자해놨던 잉여자산들을 팔아치우며 간신히 이익을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볼 때 중·소규모 대부업체들은 자연 도태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체력이 약한 금융회사들이 하나둘씩 밀려나면서 제도권 금융회사의 고객저변은 점차 더 좁아질 전망이다. 금융사들의 재무건전성이 강화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범위가 줄고 특히 최저신용자들에게는 자발적 회생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제도권 밖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금융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금융을 하려면 저신용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하지만 상환능력이 없는 대출자는 금융이 아닌 복지의 개념으로 해결해야 하는 만큼 저신용자 대출제도 정비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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