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삼성전자가 ‘제2의 애플‘이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6-10-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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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꼭 1년 만인 이번에는 삼성전자를 두둔하는 쪽으로 공격한 것을 계기로 ‘과연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행동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직접 나서서 수익을 챙기는 헤지펀드를 말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벌처펀드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검은 독수리에 비유되는 벌처펀드는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세컨더리 인수합병(M&A) 시장에 출회되는 매물을 투자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애플, 펩시, 듀폰 등 세계 최고기업도 겨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지펀드가 무엇인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헤지펀드란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슨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일종의 사모펀드다. 대체로 10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쉽을 결성한 뒤 조세회피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활동해 왔다.
조세회피지역은 법인이윤과 개인소득에 대한 원천과세가 전혀 없거나 과세 시에는 아주 저율의 세금이 부과되는 지역을 말한다. 면세대상과 정도에 따라 △조세천국지역 △조세은신지역 △조세특혜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헤지펀드가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조세천국지역이다.

1990년대까지 헤지펀드의 80% 정도가 조세회피 지역에서 활동했다. 세계 3대 조세회피지역으로는 케이먼 제도와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북동부 지역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말레이시아 북동부는 싱가포르와 홍콩 마카오, 아일랜드는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로 이동되고 있다.

투자전략은 ‘수동적’ 자세가 지배적이었다. 수익을 내주는 주체는 투자대상이고,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증거금대비 총투자 금액) 비율을 끌어올려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그만큼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채무상환 유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경우 그 비율이 100배에 달했다.

헤지펀드 투자전략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다. 1990년 이후 각종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헤지펀드가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국제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 헤지펀드가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투자자로부터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을 당한다.

마진 콜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 현상으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헤지펀드들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마진 콜이 있을 경우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할 경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미친다.
헤지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먼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대상으로 택한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서는 외국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 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게 된다. 헤지펀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가도 신흥시장에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나비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미국 단일금융법의 핵심이 된 ‘볼커 룰’에서는 헤지펀드의 상징인 레버리지 비율을 5배 이내로 엄격하게 규제했다. ‘헤지펀드의 대부’격인 조지 소로스가 자신이 운용하던 타이거 펀드 등의 자금을 고객에게 되돌려주면서 헤지펀드 활동이 위축국면에 들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엘리엇 매니지먼트 운용자인 폴 싱어와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등은 새로운 규제환경에 적극 변신해 나갔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목을 내걸고 투자대상 기업의 모든 것을 간섭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뀐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금융위기 이후 수익률에 목말라 하는 투자자가 자금을 몰아주면서 급성장하는 추세다.

이번에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을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그런 요구가 주가를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다. 빌 애크먼의 밸리먼트와 앨러간 간 적대적 M&A, 넬슨 팰츠의 펩시 이사회와 듀톤 간 분리 요구 사례에서 보듯이 돈이 되면 뭐든지 다하는 것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실제 모습이다.

특히 ‘캘럭시’와 ‘아이폰’ 시리즈로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애플도 2년 전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상징격인 칼 아이칸으로부터 자사주 매입 요구에 시달려 결국은 응했다. 애플 입장에서 주가 관리가 매우 중요했던 올해 5월에는 칼 아이칸이 보유한 주식을 전량 처분해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주인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은 ‘윔블던 현상’이 가장 심한 국가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인인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한국처럼 윔블던 현상이 심한 국가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취약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자본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유출과 직결되는 점이다. 벌써부터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외환위기 이후 대표적인 먹튀 사례인 ‘제2의 론스타가 되지 않을까’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의 무력화도 우려된다. 외국자본은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외환위기 국가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비유해 윔블던 현상을 ‘금융신탁통치 시대’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적대적 M&A 등을 통해 수익을 능동적으로 창출해 가기 때문에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국내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정도는 더 심하다. 이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화보유액과 경상수지흑자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외자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과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증적인 사모펀드나 헤지펀드를 조성하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 역차별 요소를 걷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 이런 자세만 있다면 앞으로 더 심해질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과 우리 국부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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