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간 2마리 말의 '승마장 혈투' 사건

입력 2016-10-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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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말 `에비앙`의 뒷발이 갑자기 수말 `에젤`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세기였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에젤은 반격할 새도 없이 쓰러졌다.

승마장 관리사가 황급히 달려가 둘을 떼어놨지만 에젤은 허벅지 뼈가 이미 부러진 상태였다. 수의사는 에젤의 승마 수명이 다했다며 안락사를 권했다. 당시 14세. 사람 나이로는 약 40세였다.

승마용으로 으뜸인 벨기에산 윔블러드종이었던 에젤은 2008년 국내 중소기업 사주 A씨의 손에 넘어왔다.

에젤을 걷어찬 5살 한국 조랑말 에비앙 역시 A씨 소유였다.

전문적으로 말을 관리할 수 없었던 A씨는 월 200만원대의 관리비를 내고 한화그룹 산하 `로얄새들 승마장`에 두 말을 맡겨왔다.

고양시 소재 로얄새들 승마클럽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와 2014년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을 함께 딴 한화그룹 삼남 김동선 선수의 훈련지로 알려진 고급 승마장이다.

에젤과 에비앙에게 문제가 생긴 건 2013년 10월이었다.

에젤이 며칠 사이 체중이 급감하자 전담 교관은 에젤이 생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한화 측 말 관리사에게 방목을 지시했다.

에젤이 외로워 보이자 "친구 에비앙도 함께 방목시키되 서로 다투지 않는지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말 관리사는 에젤과 에비앙을 목초지에 풀어놓고 10분 만에 자리를 떴다.

관리사가 사라지자 긴장 상태이던 에비앙이 에젤의 왼쪽 허벅지를 걷어차는 `사고`가 벌어졌다. 다리뼈가 완전히 골절된 에젤은 폐사했다.

에젤을 잃은 주인 A씨는 한화 측과 전담 교관에 소송을 내고 에젤 구입비 6천500만원과 훈련비 등 1억2천만원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화 측은 "에젤에게 최상급 사료를 주고 정성 들여 관리했다"며 방목을 지시한 승마교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교관 역시 "방목 장소나 방법 등은 한화가 정한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한화 홀로 6천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말은 특성상 두 마리 이상 함께 방목되면 사고 위험성이 있다"며 한화 측 말 관리자가 방목 후 지속적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책임이 크다고 봤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30부(강영수 부장판사)도 이달 21일 A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한화뿐 아니라 교관 역시 에젤이 죽음에 이른 데 공동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배상액은 3천500만원으로 줄였다. 재판부는 "에젤은 폐사 당시 비타민E 결핍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가치가 상당 부분 감소했다"며 비슷한 나이의 독일산 경주마가 3천500만원에 팔린 점을 참작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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