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싱글라이더' 누군가에게는 '인생영화' 될 것" [인터뷰]

입력 2017-02-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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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물론 할리우드도 사랑한 액션 배우 `이병헌` 그래서일까? 그를 떠올리면 이런 장르가 먼저 생각난다. 액션, 범죄, 스릴러 같은 것들. 하지만 지금의 `갓`병헌을 키운 건 굵직하고 터프한 것들이 아니라 부드럽고 섬세한 작품들이다.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풋풋한 감성을,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해 여름`에서는 첫사랑의 아련함을 완벽하게 그려낸 그다. 이런 이병헌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만한 작품으로 그가 스크린을 다시 찾았다. 한동안 몸을 쓰던 이병헌이 이번에는 총과 칼을 내려놓고 10여 년 만에 감성 영화로 돌아왔다.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던 남자가 있다. 남은 가족을 호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그는 부실채권사태로 회사가 망하자 가족에게 돌아가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이병헌은 기러기 아빠 강재훈으로 분해 한 가정의 가장이 짊어지게 되는 삶의 무게를 깊이 있게 담아냈다.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삶의 모든 것이라 믿어왔던 가치가 무너져 내렸을 때 마주하는 암담함을 이병헌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90% 이상의 분량을 책임지는 이병헌이지만 대사도 거의 없고 큰 움직임도 없다. 그는 절제된 연기로 더 절절한 감정선을 끌고 간다. 오로지 그의 눈빛만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극에 몰입하게 된다. 최근 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싱글라이더`는 최근 작품들과 색이 다르다. 진한 감성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이 영화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 정서가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나온 것 같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지 않나. 행복은 가까이 있는 데 말이다. 내가 연기하는 재훈은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의 모습을 대변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공감하는 사람에게는 소위 `인생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인은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고 있나.
나 역시 놓치고 있다. `매그니피센트7` 촬영 이후에 `마스터` 촬영이 잡혀 있었다. 그사이에 남은 2달 동안 `싱글라이더`를 마쳐야 했다. 쉴 시간이 없더라. 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관객들이 잠깐 서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계속 앞만 보고 달리는 거다. 참 아이러니했다.
왜 그렇게 쉼 없이 달리고 있나.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연기를 하고 싶다. 이전엔 다작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1~2년에 한 작품씩 했었다. 미국영화를 하면서 일의 양이 늘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영화는 그대로 하는데 그 사이에 미국영화를 촬영하고 있으니까.
이번 영화는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가 많은 관객에게 돌아볼 시간을 제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분량은 90% 이상인데 대사는 별로 없다. 오로지 감정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야 했을 텐데.
대사가 별로 없어서 `너무 할 게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장면만 찍으면 이 영화 끝났겠네요` 생각했는데 실제로 하다 보니까 표정으로 관객에게 의미와 의도를 전달하는 게 힘든 부분이 있다. 표정이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이고 자칫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이 감정으로 연기했지만,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부분을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고 그 어떤 영화보다 모니터를 철저히 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배우로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재훈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보고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어떨 것 같나.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멱살을 잡거나 해야 하지 않냐`는 얘기를 하는데 재훈의 심리적인 상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어떤 감정이 극에 달하다 보면 화가 나는 것과 아예 반대로 간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놓아버리는 것 같다.
촬영하면서 낸 아이디어가 있나.
`내부자들`은 영화가 코믹하기도 하고 스펙타클하고 다른 상황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남한산성`처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든가 대사 없이도 진지한 영화에서는 아이디어나 애드립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싱글라이더`는 워낙 완성도가 높은 책이어서 굳이 내 아이디어를 내서 바꿀 이유가 없었다.
영화 초반에 세게 맞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만 보면 액션 영화인 줄 아실 거다. `얼마나 아팠냐`고 물어보시는데 진짜 맞은 게 아니었다. 시각적으로 세게 때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액션과 리액션으로 나온 장면이다.
`싱글라이더`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달라.
사실 `싱글라이더`라는 제목만 보고는 끌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영화인가 생각했다. 그보다 이상한 건 `번지점프를 하다`였다. 국가 대항을 다룬 스포츠 영화인 줄 알았으니까. 이번 `싱글라이더`는 오토바이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영화의 반전에 대한 충격보다는 재훈과 똑같이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충격을 받길 원한다. 관객 수가 많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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