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가계 빚 대책…강남 불패론 vs 필패론

입력 2017-06-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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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3년 전 `머니 볼`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조만간 들이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금리 시대가 마감되는 시점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빚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가슴 깊게 파고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이라는 미명아래 금리를 제로 수준(유럽, 일본은 마이너스)까지 내리고 돈을 푸는 것을 마치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경제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기간도 8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져갔다.

세계 빚(국가+민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18경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대비 225%로 임계치인 200%를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2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2천500만원에 달한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는 빚이 많다. IMF,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국가 채무는 595조원, 가계 빚은 1360조원에 달한다. 인구 5천만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1인당 4천만원에 근접하는 액수다. 이 중 국가 채무는 아직까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GDP대비 37%로 신흥국 임계치인 70%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초이노믹스’ 때문에 부쩍 늘어난 가계 빚은 위험하다. BIS가 민간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대비 민간부채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이 3.1% 포인트다. 주의(2%p 미만 ’보통‘, 2∼10%p ’주의‘, 10%p 이상 ’경고‘) 단계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다.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초이노믹스 추진 당시처럼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치에 도달한 빚을 더 늘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최소한 국민의 이자만이라도)을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미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빚을 줄이면 이제 막 돋기 시작한 ‘경기 회복의 새싹(green shoot)’이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빚 부담을 줄이더라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건이 따르지 않을 때에는 이 과제는 쉽지 않다.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축소, 금리인상을 통해 출구전략을 추진하거나 모색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Fed)는 정책금리를 세 차례 인상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4월부터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중국 인민은행도 긴축 기조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다.

IMF를 비롯한 예측기관이 빚 부담을 연착륙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와 한국 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금리 등이 제 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경제주체의 가처분소득과 빚 상환능력이 더 떨어지고 정책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계 빚 대책을 세울 때 가처분소득(총소득-이자 등 각종 비용) 관리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가계 빚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경우 이자 경감분보다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감소해 경기를 둔화시킬 우려가 높다. 환금성의 높은 아파트의 경우 역자산 효과계수는 ‘0.23(아파트값 1% 하락 때 소비 0.23% 감소)’으로 높게 나온다.



현 정부가 한편으로 재정을 통해 경기를 살리고 다른 한편으로 올해 7월말 시한인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대출인정비율(LTV)을 연장하거나 총부채원리금상황비율(DSR)을 도입해 가계 빚을 줄이는 방안을 병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임금소득을 늘리는 대신 이자부담을 줄여 가처분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 빚 대책 발표를 앞두고 10년 전 당시 강남아파트값이 떨어지는 시점에 한국 부동산 시장에 밝은 두 외국인 전문가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들고 나와 화제가 된 적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강남아파트 가격을 잡느냐 여부가 가계 빚의 주범인 주택담보대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는 1993년 이후 서울아파트를 집중 연구해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론’이다. 그는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라고 혹평을 내릴 정도로 한국은 아파트 위주의 기형적인 주거문화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민의 주거형태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의 13.5%에서 2015년에는 63.1%로 급증했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빠른 속도다. 우리와 국토여건이 비슷한 일본에 비해서는 3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인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것은 아파트가 가장 유효한 재테크 수단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1970∼80년대에는 시세차익이 보장되는 분양가 통제시스템이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문화로 자리 잡았고, 분양가 자율화 시대에도 ‘아파트=재테크’ 등식이 성립돼 이 등식이 깨지지 않는 한 ‘강남 불패론(不敗論)’은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경제 애널리스트인 다치키 마코토의 부동산 버블 붕괴론에 근거해 강남아파트값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강남 필패론(必敗論)’이다. 그는 ‘일본의 부동산 버블붕괴 과정을 볼 때 한국도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구조와 기업의 해외진출에 따른 산업공동화 등으로 부동산 버블은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강남 사람을 중심으로 다른 곳은 급락하더라도 강남아파트값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패론’을 믿고 있으나 그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과정에서 일본의 강남으로 불리웠던 도쿄의 세타가야(世田谷) 지역의 집값이 의외로 큰 폭으로 떨어졌던 사례를 들어 강남아파트값도 반드시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강남아파트값 ‘불패’냐 아니면 ‘필패’냐. 이 문제를 부동산값 예측에 관한 한 지금까지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는 인구통계학적 기법을 통해 알아본다. 이 이론은 한 나라의 인구구성에서 자기주택 소유의욕이 가장 강한 소위 자산계층이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부동산값이 결정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한 나라의 인구구성에서 자산 계층이 두터우면 부동산값이 높게 형성되고 중장기적으로는 현 자산계층이 은퇴하고 차기 자산계층이 어떤 형태로 채워주느냐에 따라 부동산값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은퇴하는 자산계층보다 차기 자산계층이 더 두텁게 채워줄 경우 부동산값의 상승국면은 지속된다고 보는 것이 이 이론에 근거한 예상이다.

우리의 인구통계 그래프를 보면 신생아 출산이 1965년까지 급격히 증가하다가 그 이후에는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핵심자산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특히 강남아파트 가격)은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해리 텐트의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에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헤리 텐트의 주장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신흥국보다 미국의 위상을 너무 높게 본 것이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미국 와튼 스쿨의 제라밀 시겔 교수는 2010년 이후에도 중국, 인도, 베트남 등에 의해 세계 경기가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을 제시해 반박했다.

간단한 생산함수(Y=f(K,L,A), K=자본, L=노동, f( )는 함수형태)를 통해 두 사람의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 지를 알아보자. 하나의 국가로 진전되는 시대에서 생산함수의 적용대상을 세계로 확대시킬 경우 종전처럼 특정국이 갖고 있는 인구수와 인구구성상의 한계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인구통계학적 기법을 토대로 강남 등 인기지역의 아파트값을 예상해 보면 베이붐 세대가 은퇴하는 2015∼2018년까지 급락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베이붐 세대가 은퇴하면 다음(에코붐) 세대가 뒷받침해 주지 못하게 때문에 그 후 강남지역을 포함해 한국의 주택시장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동시에 시사한다.

2차 대책 발표를 앞두고 강남아파트값에 대한 예상이 흐트러지는 시점에서 해묵은 ‘불패론’과 ‘필패론’ 간 논쟁이 재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차 때처럼 임시방편으로 대응했다간 불패론에 다시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식의 대책은 필패론으로 악화될 수 있다. 다소 늦더라도 연착륙시킬 수 있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반드시 보유세 강화 등을 통해 부동산 투자 기대 수익률을 낮추는 대신 주식 등 다른 투자수단의 기대 수익률을 높이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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