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신경영 24년, 새로운 문 여는 삼성

신인규 기자

입력 2017-06-07 19:51  

소설가 김영하 씨는 문학적인 관점에서 영웅이 가져야 하는 세 가지 조건으로 단호한 의지를 가질 것, 충분한 위기가 있을 것, 그리고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있어야 함을 들었습니다.


삼성의 역사를 이같은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요소들이 모두 들어맞은 때가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그 유명한 `신경영 선언`이 있었던 1993년 6월 7일입니다.

불량인 세탁기 뚜껑을 태연하게 칼로 깎아내 대충 조립하던 `적당주의 삼성`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꿔보자"는 이 회장의 일갈 이후 근본적으로 변합니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의 골목대장에 머물던 삼성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괄목상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경영 선언"이라는 재계의 평이, 그 과도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과장일 수 없는 이유는 실제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이 거둔 성과에 있습니다.

`신경영 선언`으로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오너십이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겁니다.


삼성이 매년,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에도 신경영 선언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되새겨왔던 건 이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변화기류가 관측됩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올해 신경영 선언과 관련한 여타의 행사나 기념식, 사내방송 등이 전무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조용한 6월 7일.

현재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사 중인 데다 그룹 미래전략실도 해체한 상황에서 삼성이 오너 관련 이슈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다른 분석도 나옵니다.

삼성이 미래를 준비하는 동력을 강력한 오너십이 아닌 시스템에서 찾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중인 2017년 5월,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 10조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부회장의 작품으로 평가받던 하만 인수액을 웃도는 금액인데다, 오너 경영의 장점으로 꼽히는 대규모·장기적 투자가 오너가 없는 가운데 논의되는 모습은 분명히 주목할 부분입니다.

한 달 앞선 4월에는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높일 방안으로 거론됐던 지주사 전환 계획도 전면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철회로 인한 오너 지배력 약화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일, 매년 총수 일가가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호암상 시상식에 이 부회장 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불참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최근의 삼성에서 오너 일가의 모습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오너십은 산업 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었던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점들을 낳아왔던 양날의 칼이었습니다.

국내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삼성 역시 오너 리스크라는 위기를 단호한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만약 삼성의 최근의 행보가 `오너십의 그림자`를 지울 새로운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착수한 것이라면, 그 의의는 24년 전의 신경영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거대한 실험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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